[사이언스 인 미디어]영화 '13층'···VR 세상, 오긴 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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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VR)이 뜬다는 말을 들은 지 4~5년 된 것 같은데 그날은 언제 올까. '곧' 온다고 하니 기다려보기로 하자.

거추장스런 기기를 뒤집어써야만 VR인가. 우린 이미 가상현실에 살고 있다고!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가장 유명한 건 부처님 '색즉시공' 아닐까. 물질 현상(색)은 실체가 없다(공). 모두 허상이란 말이다. 그러니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

'버클리 주교'로 유명한 영국 조지 버클리는 '관념 다발'론을 제기했다. 세계는 관념 속 세상일 뿐 관념을 떠나면 세계는 사라진다는 도발이다.

철학 역사상 이보다 분노를 자아낸 교설이 또 있을까.

영화 매트릭스는 묻는다. “빨간 약 먹을래, 파란 약 먹을래?”. 그건 이런 뜻 아닐까. 진짜 세상을 알래, 아니면 허상 속에 살래?

매트릭스와 같은 해(1999년) 세상이 가상현실이라고 주장하는 영화가 나왔다. 심오한 철학 사유에도 영상미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매트릭스에 밀린 영화 '13층'이다.

13층은 심오한 영화가 그렇듯 난해하다. 영화 '인셉션'을 본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것이다. 기막힌 영화를 본 것 같은데 남에게 설명하려면 입이 안 떨어진다.

13층은 미국 LA를 배경으로 1937년과 1999년을 오간다. 1937년 주인공은 한 호텔 바텐더에게 편지를 맡긴다. 1999년 한 빌딩 13층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주인공과 주변 사람이 얽힌 경찰 수사와 알리바이 만들기가 이어진다.

용의자로 지목받은 남자는 살인사건을 조사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엮인 가상세계가 관련된 사실을 밝혀낸다.

용의자는 진실을 알기 위해 가상세계에 진입해 1937년으로 간다. 가상현실로 본 1937년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실제'와 차이가 없었다.

사람, 건물, 차, 음식 모두 진짜와 구분이 안됐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살인자라는 말을 들은 용의자는 자신이 진짜 살인을 했는지 안 했는지 구분이 어려워진다.

가상현실이 현실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교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교한 가짜 동영상 '딥 페이크'가 걱정거리로 다가온다.

로봇이 사람과 똑같은 음성을 내는 시대다. 전화 건 상대가 사람이라는 보장이 없다.

언젠가는 VR 기기를 쓰지 않고도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러면 가상현실과 현실을 구분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가상이 더욱 실제 같은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 리얼리티'가 올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VR 기기는 우리가 가상현실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위장'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주위를 잘 둘러보자. 당신은 정말 '현실세계'에 살고 있는가.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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