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갈길 먼 'AI 변호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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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AI 변호사'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에서는 이미 2016년 5월부터 인공지능(AI) 변호사 로스(ROSS)가 실무에 투입됐다. 변호사 업무 보조 인력을 대체했다. 로스는 초당 10억건이 넘는 법률문서를 검토, 분석한다.

국내에서도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법률 전문 AI 로봇 로보와 유렉스를 실무에 배치했다. 수십만건에 달하는 판례와 법령을 빠르게 검색, 변호사 업무를 돕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에 비해 국내는 걸음마 단계다. 법률 산업과 AI 기술 간 융합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AI 솔루션 개발에 필수 요소인 법률 데이터가 법원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각종 규제도 발목을 잡는다.

◇AI, 법률 서비스 질 '점프업'

AI가 법률 산업에 어느 정도 파급력을 몰고 올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AI가 변호사 자체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당장은 AI가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검색과 자료 분야에 집중 접목되고 있다. 판례나 증거자료를 수집·분석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계약서 검토 역할도 맡는다.

이 같은 변화만으로도 법률 서비스 질은 크게 올라간다. 단순 업무가 줄어들면서 변호사, 판사, 검사 모두 남는 시간을 효과적인 곳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현재 법관 숫자 부족에 시달리는 중이다. '5분 재판'으로 비아냥이 나올 만큼 구술 변론 약화 문제를 겪고 있다.

AI가 제반 업무를 신속히 해결해준다면 변론권을 지금보다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 온 국민이 바라는 완전한 재판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게 법원 관계자 설명이다.

변호사도 클라이언트와 커뮤니케이션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새내기 변호사 업무 중 10% 정도는 법률 문서 검토에 몰려있는 게 현실이다.

법률 서비스 영역도 확대된다. 외면 받던 소액 사건도 법리를 다퉈볼 길이 열렸다. 캐나다 AI 로봇 '두낫페이(DoNotPay)'는 25만건이 넘는 주차 티켓 사건을 담당, 16만건 상당 주차 딱지를 취소시키는 전공을 쌓았다. 두낫페이를 통해 뒤집힌 판결이 64%에 이른다. 미국과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법률 산업 전체 생산성도 증대된다. 자료 수집, 분석은 물론 기본적 의사결정까지 자동화되기 때문이다. 법률 시장은 국내 산업 중 생산성이 낮은 편에 속한다. 하나의 사건에도 수십, 수백 시간을 써야 한다. 법조계는 AI를 통해 이 시간이 5분의 1 가량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법이 시민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효과도 예상된다. 큰 소송에 휘말린 경우가 아니라면 AI에게 간단한 법률 자문, 조언을 구할 수 있다.

◇법원, 판결 데이터 독점에 발목

이렇게 혜택이 많은데도 AI 기술이 언제 활성화될지는 묘연하다. 법원이 판례나 인수합병 계약서와 같은 여러 법률 문서를 틀어쥐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상업적 이용에 대한 우려를 포함해 이런저런 이유로 공개속도가 더디다.

그나마 대법원 판례는 일부 공개한다. 반면 하급심 판례는 공개 비율이 0.2% 안팎에 그친다. 물론 사건번호, 법원명, 날짜 등을 알면 판결문을 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상태로는 실효성 있는 AI 솔루션이 나올 수 없다.

키워드로 사건 유형을 검색하면 관련 판례가 주르륵 등장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만 AI 분석 알고리즘을 설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하급심 판례 기준 1% 넘게만 열어줘도 AI와 법률 간 융합이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세계 법원은 국민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판결문을 대부분 개방한다. 미국과 호주·캐나다는 실명 표기가 원칙이다. 미국은 피임·동성애, 일본은 가사·명예훼손사건 등 예외적 사건만 익명 처리한다. 성범죄 피해자도 익명 처리해 선별적으로 비공개한다.

프랑스도 비슷하다. 판결문을 일반에 공개된 간행물로 인식한다. 독일과 같은 대륙법계 국가들만 선별적 공개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제한적이지는 않다.

규제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AI 변호사가 유료로 서비스되는 순간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최근 “어떠한 행태이건 비용이나 수수료가 전제된 리걸테크 회사의 법률 서비스는 위법하다”고 밝힌 바 있다.

AI 시대를 맞이할 준비도 덜 됐다. 데이터를 손에 쥔 법원만 바라보고 있다. 관련 주제 논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회적 합의 과정도 부족하다. AI가 법률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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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정보공유센터'로 물꼬 트나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사법 정보 공개 포털과 공유 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다만 일반에 법률 정보를 얼마나, 어떻게 풀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법원 투명성과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결정할 방침이다.

현재 사법부는 막대한 전자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DB) 저장된 정형 데이터만 100테라바이트(TB)가 넘는다. A4 용지로 변환 시 약 350억장에 달한다.

전자소송이 활성화된 결과다. 2010년 특허소송 분야에서 시작된 전자소송은 2011년 민사, 2013년 가사, 행정, 신청, 2014년 도산, 2015년 집행, 비송 등으로 확대됐다. 전자소송 이용 비율도 급증하고 있다. 민사본안 사건은 70% 넘게 전자소송으로 이뤄진다.

사법부는 확보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판사무 혁신을 완성할 목표다. 2024년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을 구축, 스마트법원을 선보인다.

AI 기술은 재판사무 지원 업무를 담당한다. 쟁점 분석을 비롯해 사건 처리, 재판서 작성에 도움을 준다. 예측 가능한 재판을 구현하는 데도 힘을 보탠다.

그러나 변호사 업계는 법원 행보에 견제구를 던진다. 법원 선진화에 앞서 법률 데이터 공개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갖은 법원이 민간 법률 서비스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우려도 나온다.

사법 정보 공개 포털과 공유 센터가 이 같은 갈등을 풀어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안희철 법무법인 양재 변호사는 “개인정보를 포함한 민감한 정보 외 일반적 법률정보는 모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사법부 판결이 신뢰를 얻고 법리가 더욱 세밀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판결문 공개 설문조사

단위: %, 명

(자료=대한변호사협회, 2018년 5월 23일 온라인 설문조사, 표본오차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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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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