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맥주 '종량세' 전환시 엇갈리는 '희비'…가격 인상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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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맥주의 인기가 거세다. 주요 인기 비결은 국산 맥주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폭 할인할 수 있는 가격경쟁력으로 빠르게 가정용 시장을 잠식해왔다. 500mL 한 캔에 4000원 가량인 맥주를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4캔에 만원'으로 할인 판매한다. 최근 편의점에서는 4캔 5000원, 대형마트에서는 4캔에 8000~9000원에 판매하는 맥주도 등장했다.

◇수입-국산맥주, 기울어진 운동장

수입 맥주의 거센 할인 공세에 설 곳을 잃어가는 국산 맥주 제조업체는 수입 맥주 가격경쟁력이 세금부과 구조로 인한 역차별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수입 맥주 제조사가 상대적으로 주세 등 세금을 덜 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맥주 제조업체는 불평등과 역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위치에서 올바른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정책 마련을 지속 요구해왔다.

수입 맥주는 수입원가(수입신고가)에 관세가 붙고 관세가 더해진 수입원가의 72%를 주세로 낸다. 주세의 30%(관세 포함 수입원가의 21.6%)는 교육세로 낸다. 여기에 수입맥주사의 이윤과 유통마진이 더해져 가격이 결정된다. 수입맥주는 신고가를 낮게 책정하면 주세와 교육세가 낮게 책정돼 수입맥주가 국산맥주보다 세금을 덜 내는 구조다. 신고가도 수입사에서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얼마든지 자체적으로 낮게 신고할 수 있다. 한 수입맥주회사가 지난해 납부한 주세와 교육세는 상품판매액 16.2%에 불과한 상황이다.

반면 국산 맥주 회사는 이윤 및 판매관리비 등이 포함된 제조원가에 주세와 교육세가 붙는 구조다. 제조원가 72%가 주세로 붙고, 마찬가지로 주세의 30%(제조원가의 21.6%)를 교육세로 낸다.

결국 국산맥주의 '출고원가'와 수입맥주의 '수입신고가'가 가격차이를 양산하는 결정적 이유인 것이다. 수입맥주는 낮은 수입신고가에 낮은 세금이 붙은 맥주에 높은 이윤을 더해 비싼 판매가격을 정한다. 하지만 수입맥주는 '4캔 1만원' 등 다양한 할인 이벤트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때문에 국내에서는 400여종 수입맥주가 유통되고 있고 수입물량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맥주 수입액은 2014년 1억1169만달러, 2015년 1억4186만달러, 2016년 1억8156만달러, 2017년 2억6309만달러로 연간 45%씩 증가했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맥주 수입액은 1억2175만달러로 전년 대비 29.5% 증가했다. 지난해 맥주 수입량은 33만1211톤으로 전년(22만508톤)에 비해 50%가량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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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맥주 혜택·저가 맥주 타격 예상

현재 정부에서 추진중인 맥주 용량을 과세표준으로 한 '종량세'로 전환이 이뤄진다면 시장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산맥주와 수입맥주, 고급맥주와 일반맥주, 고가맥주와 저가맥주 등 구분 없이 모든 맥주를 용량을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돼 그동안 수입맥주가 가장 큰 무기로 내세웠던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아사히, 기네스, 삿포로, 산토리, 에비스 등 고가의 고급맥주는 혜택을 받게 되며 원가가 낮은 저가 맥주는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가 프리미엄 맥주는 저가 맥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신고가로 인해 내고 있던 세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저가 맥주의 경우 신고가를 낮게 책정해도 고급맥주와 동일한 세금을 내야해 세금 부담이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가격경쟁력이 사라진다면 이름은 수입맥주지만 특색없고 경쟁력 없는 맥주들에게는 진입장벽 자체가 높아져 시장 진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자동적인 시장 필터 기능 역할을 해 부분별한 맥주 브랜드 수입 난립을 막아 소비자 혼란을 덜어주는 긍정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가맥주 대신 상대적으로 비싼 고급 맥주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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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맥주 세재를 바꾸는 것이 맥줏값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소비자 불만이 제기될 우려가 제기된다. 세재 개편 이후 수입맥주업체들이 다양한 할인행사를 없애 결국 비싼 가격으로 맥주를 사 마셔야 될 지 모른다는 기우에서다.

◇증세 없는 세금 체계 변경

정부의 이번 맥주 세금 종량제 전환 추진은 세금을 바꾸는 것이 아닌 세제를 바꾸는 것으로 증세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때문에 현재 부과되고 있는 세금 수준에서 과세 체계만 변경돼 가격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다만 수입맥주에 비해 불리한 세금 체계를 바꿔 합리적이고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또한 수입맥주 업체도 가격 저항과 소비자 불만을 고려해 지난 수년간 진행해온 묶음 할인행사를 갑자기 중단할 가능성도 낮을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 입장에서도 시장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뒤 세금 인상이 예상되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내 맥주 업계 관계자는 “시장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수입맥주에 비해 국산맥주가 받는 역차별 해소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며 “국산 맥주와 공평한 시스템에서 경쟁 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을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주현 유통 전문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