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포럼]고리 1호기 영구정지 1년 맞아

지난해 6월 19일 고리 1호기가 40년 동안 안전하게 운전되고 영구히 정지됐다. 동일한 원전이 미국에서 40년 동안 운전된 후 20년 연장 운전을 승인받아 그 가운데 5기가 운전되고 있고, 일부는 추가로 20년 연장을 계획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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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정지 결정 과정에서 원전 해체 산업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심어 준 결과 지역 주민은 마치 황금알을 낳는 신산업을 기대하게 됐다. 관료와 정치인은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기 보다 편승해서 표를 얻어 갔다. 그 결과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를 권고했다. 우리 국민은 10조원이 넘는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역 주민이 기대한 해체 센터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체 센터의 역할이 별로 없다.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헌신한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이 도열한 가운데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것이 적절했는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1368명 사망설 등 환경단체나 주장할 오류 수치를 읽은 것이 옳았는지 착잡하다. 그 후 1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있었다. 최초 설문부터 건설 재개 의견이 많았다. 원전 비중 축소 의견도 아니었다. 어려운 여건에서 치러진 공론화 결과 60%의 지지로 건설 재개가 결정됐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는 원전 비중 축소, 원전 안전 기준 강화 등을 권고했다. 애초 공론화를 할 때 법 근거로 만든 국무총리 훈령을 넘어선 월권이었다.

공론화 결과가 발표되고 주말을 지나 바로 나흘 만에 에너지 전환 로드맵이 국무회의에 상정·통과됐다. 그 내용은 대통령 선거 공약 내용 그대로였고, 전문가와 관료에 의한 정책 수립 기능이 상실됐음을 알린 것과 다르지 않다.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근거로 제8차 전력수급계획이 수립됐다. 당초 수립한 기본 방향과는 전혀 다르지만 탈원전 정책에 맞아떨어지는 전력수급계획이 도출됐다. 12월 27일 국회 보고, 28일 공청회, 29일 전력심의위원회를 신속히 통과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건설 반대 입장으로 활발히 활동한 탈핵운동가 10여명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과 위원장, 원자력안전재단·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한국원자력연구원 이사 및 감사로 임명됐다.

원안위의 활약 때문인지 원전 가동률이 50%대로 낮아지면서 탈원전 상황을 예행 연습하게 됐다. 한국전력공사는 12조원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당분간 전력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외치던 정부와 환경단체는 이제 에너지 전환에 따르는 합당한 비용을 국민이 지불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원전 가동률이 낮아진 것이 탈원전 정책의 직접 결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원전이 정지되고 다른 전원으로 전력을 공급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충분히 보여 주는 시뮬레이션이었다.

아랍에미리트(UAE) 수출 원전과 관련해 불미스런 의혹이 여럿 제기됐지만 결국 대통령의 UAE 원전 건설 종료식 '신의 축복' 발언까지 이어졌다. 원전 수출만은 열심히 하겠다고 했지만 국내 탈원전 소식이 원전 수출에 먹구름으로 작용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제 재생에너지 투자를 위한 재원이 없음을 알게 되기 시작한 듯하다. 또 풍력과 태양광에 보조금을 줘야 할 전력 회사가 보조금을 주기 어려운 형편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정부는 출범 초기에 국민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했다. 공론화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또 그 이후에도 전문가의 많은 비판이 있었다. 이념이나 정치 선호도는 정답이 없지만 과학과 기술은 정답이 있다. 전문가의 말은 경청하는 것이 좋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bjch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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