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 업계는 수년 째 수천억원대 적자를 거듭하면서도 투자를 멈추지 않는다. 인프라와 마케팅에 상당한 비용을 투입하면서 경쟁사를 견제한다. 자본 잠식 위기에 몰려도 투자를 멈출 수 없다. 시장 점유율이 미래 수익에 직결된다는 인식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업체는 시장 후순위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총알'로 불리는 투자 자금을 유치하는데 사활을 건다. 매출을 확대하고 영업손실을 줄이기 위해 수익 모델을 다각화하고 서비스를 고도화한다. 하지만 이 같은 생존 전략을 현실화하는데도 비용이 필요하다. 온라인쇼핑 업계가 각자도생을 위한 '쩐의 전쟁'에 돌입했다.
◇“밀리면 죽는다”…적자투성이 온라인쇼핑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흑자를 내는 업체는 이베이코리아 정도다. 지난해 매출 9519억원, 영업이익 623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경쟁사들이 적자 늪에 빠진 것을 감안하면 양호한 성적표다. 하지만 전년 실적과 비교하면 영업이익은 6.9% 감소했다.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마케팅 부문에 투자비용을 늘린 탓이다.
이베이코리아가 꾸준히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비결은 50% 이상을 웃도는 시장 점유율이다. G마켓, 옥션, G9 3개 판매 채널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며 덩치를 키운 덕이다. 11번가를 비롯해 티몬, 쿠팡, 위메프 등 후발 주자는 적자를 감내하는 동시에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면서 이베이코리아 견제에 나섰다.
쿠팡은 2014년 세콰이어캐피탈과 블랙록에서 각각 1억달러(약 1140억원), 3억달러(약 3415억원)를 유치했다. 2015년에는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무려 10억달러(약 1조1400억원)를 확보하며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직매입과 오픈마켓 모델을 도입하며 '소셜커머스' 꼬리표를 뗀 쿠팡은 지난해 처음 연매출 2조원 벽을 넘었다.
하지만 영업손실은 사상 최대인 6388억원로 집계됐다. 전년과 비교해 매출은 40.1%, 영업손실은 13% 상승했다. 쿠팡의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누적 적자는 1조7000억원이다. 2014년과 2015년 유치한 총액 1조5955억원을 훌쩍 넘는다. 그동안 '라스트마일' 차별화를 위해 '로켓배송' 관련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상당한 비용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쿠팡은 올해 초 미국 법인이 보유한 기존 투자금 중 약 5100억원을 증자 형태로 한국 법인에 수혈했다.
국내 최초 소셜커머스 티몬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인사이트벤처&스톤브릿지캐피탈, KKR 컨소시엄, NHN엔터테인먼트, 시몬느 자산운용 등에서 총 2670억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2015년 1419억원, 2016년 1585억원, 2017년 1185억원 총 4189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빚이 바랬다. 2016년 기준 2676억원이었던 자본은 지난해 -2861억원 전환됐다.
위메프는 2017년 매출 4731억원, 영업손실 417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영업손실을 전년 대비 200억원가량 줄였지만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위메프는 2015년 넥슨 지주사 NXC에서 1000억원 투자금을 유치한 이후 외부 수혈이 없었다. 올해부터는 지속 성장을 위해 외부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5000억원대 투자 유치에 나선 SK플래닛 11번가는 작년 900억~1000억원대 영업 손실을 냈다.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11절' 프로모션 등이 성공을 거두며 전년 2000억원대 손실을 50% 이상 개선했지만 적자를 면치 못했다.
11번가는 지난 2016년 중국 최대 민영투자사 '중국민성투자유한공사'와 1조3000억원 규모 투자 협상을 벌였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해에는 11번가 사업부 지분을 신세계, 롯데 등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돈'이 필요한 온라인쇼핑
전자상거래 업체는 앞다퉈 차별화한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장 점유율 확대에 속도를 낸다. 하지만 온라인·모바일쇼핑이 다양화하고 포털 등으로 손쉽게 판매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체리피커'형 고객이 늘고 있다. 충성고객이 없는 무한 경쟁 시장인 셈이다.
각 사업자는 고객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규모 판촉비를 집행한다. 경쟁사보다 저렴한 가격을 노출하기 위해 할인쿠폰과 적립금을 제공한다. 고객 편의를 강화하기 위한 서비스 고도화에도 대규모 연구·개발(R&D) 비용은 필수다.
티몬은 지난 2016년 글로벌 국부펀드를 포함한 기존 주주에게서 총 800억원을 유치했다. 이듬해 시몬느 자산운용에서는 500억원을 마련했다.
티몬은 총 1300억원 자금을 '모바일 장보기 서비스'와 '종합 여행 서비스'를 고도화에 투자한다. 전자상거래 핵심 채널로 부상한 모바일 쇼핑과 새로운 수익모델로 떠오른 여행 사업에 집중해 경쟁사와 격차를 벌리는 전략이다.
쿠팡은 로켓배송 인프라를 유지·관리하는 한편 오픈마켓 서비스 '아이템마켓'에 집중한다. 앞으로 전국 배송 시간을 몇 시간 내로 줄이기 위한 라스트마일 서비스 강화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기업 홍보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최근 미국 주요 방송사 인터뷰에 등장해 쿠팡을 '한국 아마존'으로 소개했다. 해당 매체는 쿠팡이 오는 2019~2020년 상장될 것으로 예상했다.
온라인쇼핑 업계는 공격 마케팅 기조를 유지하면서 비즈니스 모델 다각화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레드오션인 일반 배송상품 시장에서 탈피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소셜커머스에서 태동한 쿠팡, 티몬, 위메프는 각각 오픈마켓, 직매입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종합 온라인쇼핑 사업자로 탈바꿈했다. 이베이코리아, 11번가, 인터파크도 해외직구, 여행, 역직구 등으로 사업 모델을 확대하며 정면 대결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쇼핑 업계가 각자도생을 위한 서비스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면서 “장기 계획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자금 유치 활동이 한층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희석 유통 전문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