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계획되지 않은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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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된 적자.”

전자상거래업계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몇 년째 수천억원대 영업 손실을 기록한 온라인쇼핑 업체는 실적 공개 때마다 적자 규모가 이미 계산상에 있은 숫자라고 강조한다.

업계 누적 적자는 조 단위에 이른 지 오래됐다. 그러나 이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수익보다 미래 투자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시장 점유율이 수익에 직결되는 데다 '한 번 밀리면 끝'이라는 인식 때문에 대규모 적자에도 인프라 투자는 멈추기가 어렵다.

입점업체도 거듭되는 온라인쇼핑 적자 행진에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주요 업체들이 자본 잠식에 빠지는 등 경영 상태가 악화되면서 판매 대금을 제대로 정산 받지 못하는 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판매자는 납득하기 어려운 '정산법'에 불만을 쏟아낸다. 사전에 약속한 판매 대금 지급 날짜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그마저도 몇 번으로 나눠 입금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일각에서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온라인쇼핑 업체가 고의로 정산 처리를 늦추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3개 유명 온라인쇼핑 업체들이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한 사실을 적발, 총 1억원 이상 과징금을 부과했다. 입점 판매자 상대로 상품 판매 대금 지연, 계약 서면 미교부, 판매수수료 일방 인상 등 이른바 갑질을 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업계에 만연된 정산 지연 문제가 늦게나마 수면으로 떠올랐다.

판매자는 온라인쇼핑 핵심이다. 소비 성향이 다른 다양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우수 판매자를 경쟁사보다 많이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한 거래를 할 수 없는 쇼핑 채널을 찾는 판매자는 없다.

영세 중소 판매자에게 예상하지 못한 정산 지연은 치명타다. 자금 회전이 정상으로 되지 않으면 폐업으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타격은 불가피하다. 온라인쇼핑업계에 만연된 '계획된 적자'보다 판매자 '계획되지 않은 적자'를 해결해야 한다.


윤희석 유통 전문기자 pione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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