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 독일에서는 흐리고 바람도 거의 없는 날씨가 연일 이어져 국가 전력 공급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이 평소의 6분의 1 수준에 그친 적이 있었다. 인접국으로 수출하는 전력량을 줄이고 비상발전기를 준비하는 등 응급 조치를 즉각 취한 덕에 가까스로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지난 2011년 9월에 일어난 사상 초유의 순환 정전 사태는 예상치 못한 냉방 수요의 급증으로 인해 전력 공급이 일시 부족해서 나타난 응급 대처의 결과였다. 전력망이 섬과 같은 우리나라로서는 유럽처럼 국가 간 전기를 끌어다 쓰거나 남는 전기를 팔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전력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전체의 6.2%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여러 보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2020년을 기점으로 육상 풍력과 태양광 발전 단가가 화석연료 발전 단가와 비슷해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현 정부의 계획대로 2030년에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전체 전력 생산의 20%를 차지한다면 전력망의 안정성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만들어진 막대한 양의 자연에너지가 아무런 제약 없이 전력망으로 들어오면 그 변동성으로 인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급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속응성 발전기나 대용량 배터리 등 하드웨어를 이용해 전력망을 보강할 수 있지만 늘어나는 변동량을 감당하기엔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역부족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서 변동성이 큰 자연에너지, 그 자체를 다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럽은 자연에너지 비중이 커지자 생산한 그대로를 전력망에 투입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그 양을 적절히 통제하는 등 전력망 안정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또 일본의 규슈전력과 히타치, 미국의 국가재생에너지연구소(NREL)는 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 대상으로 출력을 제한하거나 가동을 멈추는 등 시간에 따라 필요한 전력량만큼 생산하도록 제어해서 수요와 공급을 맞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런 불확실성을 다룰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필자는 물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여러 개의 에너지원을 ICT로 연결해 마치 대형 발전소와 같은 기능을 하는 가상발전소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사량이나 바람 등 자연 환경에 따라 변동성이 저마다 다른 수만 개의 개별 에너지원을 가상으로 통합함으로써 통제 대상을 대폭 줄일 수 있음은 물론 시스템을 통해 대규모의 자연에너지를 일사불란하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은 이와 같은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의 출력 변동 완충을 위해 하수처리장과 같이 전력 상황에 따라 탄력 운영해도 되는 전력 부하를 ICT로 연결해 가상발전소를 만든 것이다. 만약 전력 생산량이 급증한다면 이를 전력망에 투입하는 대신 연결된 전력 부하가 소모하는 방식이다. 한편 자연에너지와 전력 부하를 패키지 형태로 운영하지 않아도 방법은 있다. 가상발전소 사업자는 자연 조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계약된 전력량만을 생산해서 판매하고, 전력망 입장에서는 전력 공급이 부족할 때 예상치를 웃도는 가상발전소의 발전 여력을 이용해 그 부족분을 메우는 것이다. 자연에너지를 전력망 안정을 위한 예비력으로 쓰는 셈이다.
그동안 급격히 증가하는 자연에너지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배터리 등 전력망 안정화 설비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바꿔 보면 이 엄청난 사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곳에서 에너지신산업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전력망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자연에너지의 변동성,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는 역발상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자부품연구원 에너지IT융합연구센터 수석연구원 함경선 ksham@ke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