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요금제를 심사한 규제개혁위원회 회의가 이동통신사업자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위원들이 균형 시각을 가질 기회가 사라졌다. 규개위는 사안 중요성을 감안해 다음 달 11일 2차 회의를 개최하고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규제개혁위원회 보편요금제 심사에서는 민간·정부 위원들이 시장실패에 따른 경쟁 실종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제는 의식주가 아니고 '주식통' 시대가 됐다”면서 “이통사가 고가요금제 중심 경쟁만 했으므로 보편요금제를 도입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개위 심사국은 “해외서도 이용자 차별 문제 개선을 위해 시장개입 중이고 우리나라는 저가와 고가 요금제 간 데이터 제공량 차이가 크다”면서 보편요금제 도입 찬성 의견을 밝혔다.
한 민간위원은 “이통3사 요금제를 보니 거의 똑같다”면서 “공급자 중심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민간위원은 “대법원 판결에서 보듯 통신은 공익 기능을 가진 산업이기 때문에 국민 환원도 생각해야 한다”면서 “3사가 요금과 서비스를 쏟아내고 있지만 실익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통사가 고가요금제에 혜택을 집중하고 많은 이익도 창출했다면 요금 내릴 여력이 있을 것”이라고 몰아붙인 위원도 있었다.
의료서비스와 비교하면서 6200만명이 가입한 통신서비스에는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10명의 민간 위원 가운데 보편요금제 도입에 우려를 표한 위원은 한 명도 없었다. 통신 산업 발전을 위한 객관적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으면서 규개위 의원들이 공정한 시각을 가질 기회를 잃었다.
한 위원이 “통신사업자 성토의 장”이라고 했을 정도로 이날 회의는 이통사 비판 의견으로 시종일관했다.
사업자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한 SK텔레콤이 40분간 보편요금제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SK텔레콤은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면 다른 모든 요금제도 요금을 인하해야 한다”면서 “이통3사 영업이익의 60%인 2조원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인가제보다 강한 보편요금제 도입 시도에 무력감을 느낀다”면서 “마케팅까지 정부가 대행하면 사업자는 설 자리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법률대리인은 “보편요금제는 헌법 위배 소지가 있다”면서 “이제 무제한요금제가 폐지될 것인데 그게 과연 이용자 편익에 좋은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강병민 경희대 교수가 중립적 의견을 제시한 게 이날 이통사의 유일한 '우군'이었다.
강 교수는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면 SK텔레콤은 견딜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KT와 LG유플러스는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업이익률이 5~6%에 불과한 KT와 LG유플러스는 선두사업자인 SK텔레콤이 요금을 인하하면 영업적자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규개위는 다음 달 11일 과기정통부와 전문가 의견을 추가 청취하고 보편요금제 도입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