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면 그에 맞도록 수정하는 게 떳떳하다. 정치가 개입하면 좀 다르다. 더 많은 머릿수를 차지하는 게임에 열중하느라 한 번 한 생각과 말을 좀처럼 바꾸려 들지 않는다. 바꾸는 순간 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대신 빠르고 편한 길을 택한다. 현실에 맞게 생각을 바꾸기보다 현실을 생각에 꿰어 맞춘다.
통신 산업을 둘러싸고 이처럼 상반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잘한 것 없는 이동통신사지만 뚜렷한 합리적 근거를 토대로 새로운 주장이 나오면 최소한 듣는 시늉이라도 한다.
단통법은 제쳐 두고라도 현 정권 출범 이후 약정할인율을 높이고 취약계층·고령층 요금을 깎아 주는가 하면 로밍 제도를 개편하고 유심 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국민 개개인에게야 티도 안 나는 일인지 몰라도 이통사에는 수천억원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다. 시늉치고는 꽤 큰 손실이다.
통신비 인하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는 한 번도 생각을 바꾼 적이 없다. 어떤 논리나 자료를 제시해도 결코 설득 당하는 법이 없다. 심지어 이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면서도 기초 지식이나 논리의 핵심 오류는 시민단체라는 이유로 슬그머니 넘어간다. 그게 자랑인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지 않는 신념이야말로 '열린 사회'의 가장 무서운 적임을 모르는가. 아마도 이것을 정치로 여기는 것 같다. 집권 초기에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목적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논리나 정보의 옳고 그름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일까.
귀를 닫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정치 논리에 갇혀 있는 한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오직 기록하기 위해 쓴다. 적어도 통신 분야에서는 이 시대가 얼마나 꽉 막힌 시대였는지를 기록하기 위해.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