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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국가 핵심기술은 산업의 생명줄“이라며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20일 오전 서울대에서 만났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 여부를 둘러싼 논란 해법이 궁금했다. 이 소장은 반도체 외길만 걸어온 반도체 분야 권위자다. 세계 최초로 3차원 반도체 소자인 '벌크 핀펫(FinFET) 기술'을 개발한 주역이다. 세계 주요 반도체 회사가 이를 핵심 표준 기술로 채택했다. 특허 관리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인텔에서 기술료를 받아 한국 반도체 기술 위상을 세계에 자랑했다.

반도체공동연구소는 출입관리가 엄격했다. 연구소 현관을 들어서자 직원이 방문 목적을 확인했다. 방문대장에 면담자와 방문 목적, 연락처를 기록했다. 클린시설이어서 신발도 슬리퍼로 바꿔신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갈 때도 시간을 기록했다.

-출입관리가 엄격하다.

▲연구소에는 시험용 위험물질이 있고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외부인사 출입이나 안전관리가 철저하다. 반도체연구소는 반도체 공장 축소판이다. 내부 클린룸에 들어갈 때는 방진복을 입어야 한다. 나도 슬리퍼를 신는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산하 반도체전문위원회가 삼성전자 일부 작업환경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타당한 결론이다. 국가핵심기술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 핵심기술은 산업의 생명줄이다. 국가핵심기술 7개 중 6개가 작업환경보고서에 들어 있다고 위원회가 판정했다. 보고서를 공개하면 반도체 핵심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은 기업 영업비밀 보호를 강화한다. 국가핵심기술을 공개하면 기술을 경쟁 업체에 넘기는 것과 같다. 기업 피해는 곧 국가피해다.

-반도체 분야 국가핵심기술은 어떤 것인가.

▲가치가 높거나 성장 잠재력이 높은 핵심기술이다. 국가가 법률에 따라 핵심기술을 지정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30나노 이하급 D램과 낸드플래시, 파운드리 등 반도체 기술 7개가 국가핵심기술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예를 들면 30나노 이하급 D램이라고 하면 30나노 이상은 공개해도 좋다는 말인가. 논란의 여지가 많다. 따라서 범위를 넓혀 핵심기술을 정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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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권익은 어떻게 보호해야 하나.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유출도 막고 근로자 권익도 보호하는 접점(接點)을 찾아야 한다. 우선 정부와 전문가, 이해 당사자들이 한 곳에 모여 논의하면 서로 상생(相生)할 수 있다. 합리적으로 잘 따져 대화하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난제(難題)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게 선진국이다. 우리도 그런 문화를 이번 기회에 만들어야 한다. 기업도 역지사지 입장에서 근로자 권익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반도체 관련 보도가 잇따르자 최근 한 학부모가 반도체 관련 자료를 들고 나를 찾아 왔다. “반도체 물질이 몸에 해롭다는 데 아이가 괜찮겠느냐”며 걱정을 했다. 그래서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저는 이런 문제 제기 이전에도 반도체 분야를 연구했고 지금도 그 일을 하지만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자료가 그 분이 가지고 온 자료다.(웃음)

-한국 반도체산업은 위기인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2003년부터 칭하대와 베이징대, 푸단대에 자주 갔다. 당시 그곳 반도체 시설은 한국에 비해 형편없었다. 이게 클린룸인가 싶을 정도였다. 실험실 학생들이 마스크도 안 쓰고 소모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쪽 교수가 한국에 왔을 때 마스크나 소모품을 주면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역전됐다. 우리보다 시설이 더 좋다. 세계 최고 반도체학회에 중국 발표 논문은 2000년 전에는 거의 없었다. 지금은 논문 발표건수가 한국의 두 배 이상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무섭다. 지난 3월 상하이에서 열린 세미콘차이나에 초청 강연차 다녀왔다. 중국이 반도체산업에 얼마나 집중 투자하는지를 실감했다. 나한테 중국 반도체업체 관계자가 명함을 주며 5월에 중국에서 열리는 센서 강연에 꼭 초청하고 싶다고 했다.(이 소장이 건네준 명함을 보니 칭화유니그룹 자회사인 XMC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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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시장 점유율은.

▲다 알다시피 D램 메모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 70% 이상을 점유한다. 삼성전자는 기술력이 뛰어나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모두 세계 1위다.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 2위다. 하지만 한국은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분야 시장 점유율은 낮다. 한국은 기존 기술을 바탕으로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해야 한다.

-어떤 반도체인가.

▲인공지능(AI)반도체다. 한국이 경쟁력이 있는 분야다. 2년 전부터 미국은 AI 반도체 연구를 시작했다.

-우리가 출발이 늦은 것 아닌가.

▲우리가 잘 하는 게 메모리 공정과 소자, 회로 설계, 아키텍처다. 영업도 잘한다. 이 분야 인력도 많다. 아직 AI 반도체는 표준기술이 없다. 우리가 이 분야를 선도할 수 있다. 딥 러닝은 미국과 중국이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우리가 이 두 나라를 앞서기가 어렵다.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1등 할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게 AI 반도체다.

-한국과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술격차는 얼마로 보나.

▲기준에 따라 다르다. 세계 시장 점유율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직 중국이 한국을 추월하려면 시일이 오래 걸릴 것이다. 두려운 점은 중국이 세계 시장에서 유의미한 점유율을 갖느냐 여부다. 양산을 전제로 한다면 5년 정도라고 본다. 중국 추격이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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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기술 인력과 기술유출 방지책은 뭔가.

▲중국은 한국 인력유치에 적극적이다. 대우도 파격적이다. 민간인의 경우 국내 동종업체 취업은 제한을 하지만 해외 취업은 막을 수 없다. 우선 기술인력 퇴직을 최소화해야 한다. 퇴직인력은 최대한 재교육해 전환 배치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제도적으로 기술인력 재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방안은.

▲요즘 기업체 인사를 만나면 대학에서 반도체 공정을 해 본 학생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한다. 기업에서 재교육을 해야 한다. 기업이 교육용 라인을 하나 설치하는데 수조원이 들어간다. 인력양성을 잘해야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정보통신기술(ICT)을 이끌 창의적 융합형 반도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기업도 그런 인재를 원한다. 정부와 기업이 교육시설 비용을 분담해 융합교육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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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서 공정교육을 하나.

▲반도체 기본 공정교육을 한다. 배출한 교육생만 1만3000여명에 달한다. 이론과 실험을 병행한다. 3월에 2주간 교육을 했는데 지원자가 몰리는 바람에 시스템이 다운됐다. 당초 140명 모집에 950명이 지원했다. 항의자가 많아 2회로 늘려 교육을 했다. 신청 방법을 개선해 선착순 마감에서 접수기간을 일주일로 늘리고 추첨으로 교육생을 뽑을 생각이다. 비영리여서 현행 교육비는 유지보수비도 안된다. 그동안 연구소는 70개 이상 기관이 연간 2만3000건 이상 공정서비스를 활용했다. 문제는 연구소 클린룸이 좁고 공정 장비가 노후화했다는 점이다. 교육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교육이 능력향상에 도움을 줬다는 응답이 73%, 교육시설이 노후화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4%에 달했다. 장비와 시설 개선이 연구소의 시급한 과제다.

-학생에게 당부의 말은.

▲비전 따라 전공을 선택하지 말고 인기가 없어도 흥미가 있거나 자기 소질에 맞는 공부를 해야 그 분야에서 1등을 한다. 그러면 삶에 문제가 없다. 친구 따라 강남가면 안 된다.

-장학금 기부를 많이 했는데 이유가 있나.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함께 사는 세상이다. 내가 교수로 재직한 원광대와 경북대에 각 3000만원을 기부했다. 서울대도 1억여원을 기부했다.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더 많이 나눌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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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과 취미는.

▲가르치는 입장에서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교육한다'를 가슴에 품고 산다. 이건 시골에 살고 계신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다. 학생과 30분 이상 대화를 하며 그들의 고충을 듣는다. 아들에게는 퇴계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신기독(愼其獨, 혼자 있을 때도 행동을 조심하라)'을 당부한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마이크로시스템기술연구소를 거쳐 원광대와 경북대 교수를 역임했다. 2009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부임해 전기정보공학부 연구부학부장, 공과대학기획부학장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으로 일했다.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석학회원이다. 국무총리 표창, 젊은 공학인상,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산학연구과제 우수발명 최우수상,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했고 지난해 경암상을 받았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