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중심에는 한국 철강에 대한 고강도 관세 압력이 작용했다. 다행히도 25% 관세 폭풍은 피했지만 평균 수출량은 70%로 제한될 예정이다. '철강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논리에서 보듯 소재 산업은 한 국가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까지 흔들 수 있는 기반 산업이다. 인간 고대 문명을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으로 구분해 온 것도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그 문명 수준과 위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였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주력 산업 분야 완제품 조립과 가공 기술이 전 세계에 평준화됨에 따라 소재 기술이 제품 부가 가치 생산과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핵심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주행할 수 있는 최대 거리며, 이는 배터리 소재에 의해 결정된다. 중국은 전기차를 통한 세계 자동차 시장 석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9년부터 완성차 10%는 반드시 전기차로 팔도록 의무화했다. 또 2020년까지 18조원을 들여 현재 19만대인 전기차 충전 시설을 460만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은 현재 6만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 주요 선진국에서는 미래 사회 변화를 선도할 소재 개발과 시장 선점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과 같이 소재 산업에 지배력이 큰 국가뿐만 아니라 중국까지도 부품·소재 국산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 핵심 기초 소재 자급률을 2025년 기준 70%까지 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01년 소재·부품특별법 제정 이후 1~3차에 걸친 '소재·부품 발전 기본계획' 수립·추진으로 국내 소재 산업 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써 왔다. 그 결과 지난해 소재·부품 수출은 2821억달러(전년 대비 12% 증가), 수입은 1683억달러(전년 대비 10.3% 증가)로 역대 최대 무역 흑자(1138억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부품(1082억달러, 29.1% 증가)이 실적 향상을 주도한 결과다. 그러나 부품 제작에 필요한 핵심 소재는 여전히 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으며, LCD 유리원판 및 액정 등은 거의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반도체, 디스플레이에서 나온 이익의 상당한 부분이 다시 국외로 유출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우리 기술력으로 핵심 글로벌 산업 시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소재를 개발하고, 소재 산업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전기차 배터리 시장 현황을 비춰 볼 때 현재 시장을 선도하는 것 이상의 활동이 필요하다. 2017년 북미에서 출시된 전기차 39개 모델 가운데 26개가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해 67% 채용 비율을 기록했고, 올해 시장 전망은 더욱 밝은 상황이다. 그러나 배터리 산업은 일본 및 중국과 무한경쟁 체제에 들어간 상태여서 전망을 낙관할 수만은 않다. 산업 경쟁력 지속 확보를 위해서는 더욱더 장기 안목에서 투자하는 미래 소재 원천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
현재 주요국 초미 관심사인 4차 산업혁명 실현을 위해서도 센서, 지능형 반도체 등을 구성하는 스마트 소재 기술 선점이 필요하다. 초연결 사회, 초고령 건강 사회, 바이오·환경·에너지 산업 등 각종 첨단 산업 성장에서 소재 기술은 50~70%를 상회하는 기여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만 소재 분야는 원천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 단계까지 진행에 2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연구 영역으로, '빨리 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에서 성장하기 어려운 산업이었다. 그러나 꾸준한 투자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사례가 점점 나타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대용량 신재생에너지 저장 장치로 사용되는 배터리, 정전기로 인한 모바일 기기 파손을 막는 칩 바리스터가 우리 기술로 세계에서 약진하고 있는 품목이다. 소재 산업은 개발에 성공하기만 하면 장기간 시장 지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는 전략 분야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기술·산업 환경에서 강한 대한민국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자해야만 하는 필수 종목이다. '미래 소재' 개발을 통해 우리나라가 핵심 산업을 선도하는 내일을 기대해 본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jhahn@hanyang.ac.kr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5년 전 업비트서 580억 암호화폐 탈취…경찰 “북한 해킹조직 소행”
-
2
LG이노텍, 고대호 전무 등 임원 6명 인사…“사업 경쟁력 강화”
-
3
AI돌봄로봇 '효돌', 벤처창업혁신조달상품 선정...조달청 벤처나라 입점
-
4
롯데렌탈 “지분 매각 제안받았으나, 결정된 바 없다”
-
5
'아이폰 중 가장 얇은' 아이폰17 에어, 구매 시 고려해야 할 3가지 사항은?
-
6
美-中, “핵무기 사용 결정, AI 아닌 인간이 내려야”
-
7
국내 SW산업 44조원으로 성장했지만…해외진출 기업은 3%
-
8
반도체 장비 매출 1위 두고 ASML vs 어플라이드 격돌
-
9
삼성메디슨, 2년 연속 최대 매출 가시화…AI기업 도약 속도
-
10
美 한인갱단, '소녀상 모욕' 소말리 응징 예고...“미국 올 생각 접어”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