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132>'지식재산권(IP) 전도사' 백만기 R&D 전략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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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기 단장은 “주요 산업별로 데이터가 기반이 되는 새로은 플랫폼을 만들고 중견, 중소기업이 대기업 데이터와 공유하면 엄청나게 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백만기 산업통상자원부 연구개발(R&D)전략기획단장(차관급)은 공식 직함이 3개다. R&D기획단장과 김&장 법률사무소 변리사,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장이다. 사무실도 3개다. 1993년 한국과 미국 간 반도체 반덤핑 공세를 잘 해결해서 얻은 별명이 '미스터 반도체'다.

백 단장을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기술센터 8층 기획단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3조2000억원에 이르는 산업부의 R&D 예산 투자 전략을 총괄한다. 공직 21년, 민간 변리사 20년, 협회장 10년 이력이 말해 주듯 지식재산권(IP)과 산업기술정책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다.

-1인 3역의 업무는 어떻게 소화하는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이곳 한국기술센터로 출근한다. 김&장 변리사 사무실과 지식재산서비스협회에도 나간다. 방이 3개다.(웃음)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IP 보호 대책은 무엇인가.

▲특허 제도는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육성 차원에서 절대 필요하다. 대기업은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이나 중국의 특허제도에 관심이 높다. IP 정책은 중소기업 친화형이어야 한다. 중소기업은 IP 보호를 받지 못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서 개발한 기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필요 시 구매해야 산업 생태계가 혁신 주도형으로 바뀔 수 있다. 대기업은 해외 기업의 특허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대기업, 중소기업, 대학교 등 여러 곳에서 신기술이 나온다. 대기업이 국내 기술도 외국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살고, 산업 생태계가 되살아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인 인공지능(AI) 등에 대비한 지식재산권 전략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모두 변해야 한다. 특허만 해도 AI 시대를 맞이하면 크게 두 가지가 변할 것이다. 하나는 특허 심사에 AI 기술의 도움을 받아 심사 방법에 일대 변화가 생긴다. 둘째는 AI가 개발한 기술의 소유권 문제가 발생한다. IP 법제 개편이 필요하다. 이건 큰 숙제다. 정부도 이미 연구를 시작했다. 2030년께면 AI 변리사가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AI 기자도 등장하지 않았는가. 표준화된 서비스는 AI가 대체할 것이다. 특허청이나 로펌, 기업들이 우리 고유의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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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한국의 거시 대책은.

▲지금이 중요한 시기다.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를 구입하겠다고 제안한 것은 무슨 의미겠는가. 중국은 반도체 산업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가 국제 정세를 잘 읽고, 큰 바둑을 둬야 할 때다. 1983년 64MD램이 급성장할 무렵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보고서에 “D램 산업을 일본에 많이 빼앗겼는데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넣을 수는 없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키워 줄 필요가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에 일본과의 통상 마찰이 극심했다. 토요타 자동차를 미국인이 부수기도 했다. 일본은 1985년 미국과 반도체 협정을 체결, 물량과 가격 규제를 받았다. 이 틈을 타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성장했다. 중국은 칭화유니를 통해 대만 기술과 사람을 뽑아서 반도체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중국이 플레이어로 등장했다. 이번 기회에 무역 마찰도 해소할 겸 정치·외교에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대안으로 한국과 미국이 반도체 분야의 산업동맹 개념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미국 장비업체와 전략 협력, 반도체 분야에서 강력한 동맹이 필요하다. 한국은 지난해 아시아 최초로 유레카 회원이 됐다. 한국이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정부나 민간이 세계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1993년 한국과 미국 간 반덤핑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1992년 미국 기업 마이크론이 반덤핑 소송을 제기, 당시 한국 반도체 기업의 반덤핑 예비 판정 비율이 80%에 달했다. 그게 확정된다면 한국 반도체 기업은 다 망할 위기에 처했다. 당시 반도체 과장이던 나는 대책반을 구성, 미국으로 건너가 동분서주했다. 덤핑 비율을 낮추려면 미국 내 여론을 바꿔야 했다. 민간과 기업이 다 뛰었고, 운이 좋았다. IBM, 컴팩, 애플 같은 미국 컴퓨터 업체들을 집중 공략했다. 개별 로비스트와 접촉했다. 백방으로 뛴 결과 이들 컴퓨터 업체들이 미국 상무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존 스컬리 당시 애플 회장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후원자였다. 그가 클린턴 대통령과의 조찬에서 “한국산 D램이 고율의 덤핑을 맞으면 미국 컴퓨터업계는 재앙”이라고 말했다. 이듬해 반덤핑 비율이 0.75%로 낮아졌다. 기적같이 기사회생한 것이다. 그날 일본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다. 일본 통산성 반도체 담당 과장이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10개 항목을 보내왔다. 핵심은 미국과의 통상 마찰 회피 방안을 듣기 위함이었다. 3년 전 일본 NHK에서 '일본 반도체 산업이 왜 붕괴했나'라는 주제로 20년을 복기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때 나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정부와 기업이 깊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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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전략 기획단 구성은.

▲기획단은 4명의 매니징 디렉터(MD)와 40여명 박사급 전문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공통점은 모두 산업계에서 R&D를 담당하다 온 사람들이다.

-올해 R&D 예산과 투자 원칙은.

▲3조2000억원이다. 계속 사업과 끝난 사업, 신규 프로젝트가 있다. 5대 신산업에 집중 투자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R&D비의 50%를 지원한다.(그의 책상 옆에는 '理財正辭'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재물을 다스려서 바르게 사용하라는 의미의 '이재정사'다. 국내 주역의 대가 대산 선생이 써 준 글이다. 국가 예산을 다루는 입장에서 보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글귀다)

-5대 R&D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5대 신산업은 △전기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가전 △반도체·디스플레이 △바이오 헬스 △에너지 신산업이다. 사업화연계기술(R&DB) 전략을 수립하고 원천 기술 개발에 집중한다. 기업체가 3~5년 후 공통으로 필요한 기술이다. 융합과 플랫폼, 실증 투자를 중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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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산업 생태계는 어떤 것인가.

▲그동안 우리 산업은 대기업과 수직 계열화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허리가 약하다. 앞으로 국가 경쟁은 산업 생태계 경쟁이다. 산업 생태계에 맞는 R&D 정책이 나와야 한다. 모든 비즈니스가 모이는 기차 정거장 같은 생태계 플랫폼을 지난해에 제시했다. 주요 산업별로 데이터가 기반이 되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 중견·중소기업이 대기업 데이터와 공유하면 엄청나게 강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수직 계열화가 아닌 수평 협력 관계의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공직은 어떻게 시작했는가.

▲나는 고시 출신이 아니다. 특채됐다. 1978년 오원철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이 정부에 기술 행정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KAIST 졸업생 가운데 10명을 차출해서 보내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때 함께 간 사람들은 3년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자 모두 그만뒀다. 나만 남아서 21년 공직 생활을 했다. 그동안 최첨단 기술과 기술 혁신, 전자 산업의 최전선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한 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 장관과 차관, 청장의 절대 신임을 받아 엄청난 보람을 느꼈다. 상공부 정보기기과장 시절에는 한승수 당시 장관이 임명장을 주면서 “정보 산업은 당신이 장관이야. 꿈꾸는 대로 열심히 해보라”고 말했다. 당시 하고 싶은 정책은 다 추진했다. 벤처 산업 육성책도 만들었다. 김영삼 정부 마지막 해에 김 대통령이 과천 상공부를 방문했다. 그때 산업기술국장 자격으로 대통령에게 '벤처기업육성 정책'을 첫 번째로 브리핑했다. 그 후 '지식재산'이 크게 부상했고, 마침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지식재산 분야를 키워 보자고 제안해 와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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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와 관련해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모든 법이나 제도를 수요자 중심으로 혁신해야 한다. R&D와 함께 규제를 선제로 풀어야 한다. 지난 3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이와 관련해 '산업기술 R&D 혁신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가 구성한 규제개선협의회에 기획단 MD들이 들어갔다. R&D를 하면서 규제를 신속히 풀어 주는 역할을 기획단이 하고 있다.

-부처 간 중복 투자는 없는가.

▲개념을 정리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경쟁 개발이 필요한 것도 있다. R&D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문제는 한 부서가 같은 일을 하는 경우다. 지금은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출범, 유사 사업은 다부처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나노 융합이나 신약 개발 등이다.

-단장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플랫폼 위주의 R&D 혁신을 하겠다. 이를 위해 MD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정책을 잘 추진할 수 있도록 전략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조언자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다. 시시콜콜 간섭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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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공직자에게는 숙명이란 게 있다. 요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면 '목욕탕과 창업하는 걸 빼면 갈 곳이 없다'는 자조어가 있다. 그러나 안주하면 개인 발전이 없다.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민간과 소통하면서 민간이 필요한 정책을 만들면 몸은 힘들어도 세컨더리 캐리어가 돼 중요한 자산이 된다. 역발상으로 자기 능력을 기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정부나 기업에 있을 때 민간 입장에서 일을 했다. 최근에 좌우명을 하나 추가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다. 취미는 트래킹이다. 제주 둘레길을 다 돌았다. 지난 추석 때는 아내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9박10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시간만 나면 아내와 트래킹을 한다.

백만기 단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MBA)을 공부했다. 특허청 심사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특허청 전자심사담당관, 청와대 전산망조정위 과장, 특허청 전산과장, 상공부 정보기기과장·정보진흥과장·반도체산업과장·산업기술정책과장, 특허청 심판관,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특허청 심사4국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김&장 법률사무소 변리사,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장직을 맡고 있다.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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