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그동안 시장 예측과는 전혀 다른 지배구조 개편안을 공개해 업계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세금 없는 '편법 승계'대신 총수 일가가 자신들 돈으로 계열사 지분을 직접 매입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현대차그룹은 28일 사업과 지배 구조 개편안을 발표하고 선진화된 출자구조 구축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지주사로 전환했더라면 납부할 필요 없었던 대규모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사회적 지지를 받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 핵심을 현대차그룹 대주주가 순환출자고리 실타래를 풀면서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발표대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 분할합병 등 사업구조 개편이 완료되더라도 기존 4개의 순환출자고리는 유지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7월 이후 변경 상장 완료 시점에 기아차·현대제철·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 전부를 매입할 계획이다. 주식 매입에 필요한 자금은 대주주가 합병 후 현대글로비스 주식 처분 등을 통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주식 처분 과정에서 정몽구 회장 부자는 전례가 없는 규모의 양도소득세를 납부하게 된다. 양도세 규모가 해당 시점의 주식 가격, 매각 주식 수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1조원을 훌쩍 뛰어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부터 대주주 대상 과세표준이 3억원 이상인 경우, 양도세율이 주식을 매각해 생긴 소득의 22%에서 27.5%(주민세 포함)로 상향 조정된 점도 반영됐다.
최근까지도 투자·증권업계는 출자구조 재편과 관련 현대차그룹이 일부 계열사의 투자 부분만을 따로 떼 지주회사를 만들어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하는 방식의 시나리오를 예상해 왔다.
이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지주사에 현물출자 함으로써 그룹 전체 경영권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대주주가 바로 양도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돼 대주주의 초기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경영권을 용이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에서는 주주가 지주사에 현물출자를 하면서 발생하는 양도차액에 대해서는 해당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양도소득세 과세를 이연해 주고 있다. 관련 규정은 올해 안에 일몰된다. 하지만 이 방식은 대주주가 세금 한 푼 안내고 회사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비판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많은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면서 현물출자 방식을 취해 주주들과 시장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재편 과정은 대주주가 지분거래에 대한 막대한 세금을 납부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방식과 확실히 차별화 된다. 현대차그룹이 현물출자 방식의 지주회사 전환 구상을 접고 현대모비스를 최상위 지배회사 체제로 구조 개편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차그룹이 시장에서 예측했던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경우, 대주주가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지주회사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 할 경우 미래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할 수 있는 대규모 M&A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게 되면 지주회사 체제 내의 자회사 등이 공동 투자해 타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수하려는 기업 규모가 크면 클 수록 한 개 계열사가 인수 부담을 모두 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아울러 현대·기아차를 각각 투자 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 할 경우 자동차 사업 본연의 경쟁력도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그룹의 지속가능한 성장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주주가 대규모 사재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