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아파트 1701호, 피자 한 판이오.”
주문이 접수되자 로봇이 배달을 나간다. 그런데 아파트 현관에 도착한 로봇은 난관에 부닥친다. 1층 현관문이 굳게 닫혀 있다. 비밀번호를 어떻게 누르고 들어갈 수 있을까. 배달 대행업체는 가제트 로봇 팔을 개발해야 하는가?
또 다른 장면을 보자. 최근 자율 주행 모드로 운행하고 있던 우버 차가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가 있었다. 자율주행차의 안전성 의구심이 또다시 제기됐다. 후폭풍도 불고 있다. 여론이 좋지 않자 토요타는 시범 운행을 중단했다. 지난 18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 템페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래에 등장할 스마트시티에서 동일한 조건 실험을 한다면 어떨까. 보행자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까.
지구촌에 스마트시티 구축 경쟁이 한창이다. 가장 눈에 띄는 국가는 싱가포르다. 재미난 실험을 하고 있다.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도시 전체를 복제한 후 최적화된 스마트시티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교통, 교육, 스마트상수도 부문에서 경쟁우위를 보인다. 2025년 싱가포르의 달라진 모습이 기대된다. 완전 백지 상태에서 미래형 신도시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요즘 국내에서도 스마트시티에 쏠린 관심이 높다. 대통령이 현 정부의 야심 찬 프로젝트로 언급하면서 더 주목을 끈다. 세종시와 부산 에코델타시티가 시범도시로 선정됐다. 이와 별개로 각 지방자치단체 역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인천 송도와 경기 성남시 판교도 독자 변신을 꾀한다.
그렇다면 '한국형 스마트도시'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스마트도시는 한마디로 '약속의 땅 위에 건설되는 도시'가 돼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이 약속된 언어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근거리무선통신과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한 사물과 사물 간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해야 한다. 이렇게 돼야 진정한 미래형 도시가 될 수 있다. 특히 약속된 도시는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철학에 근거를 둬야 한다. 편리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도시여야 한다.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거주자가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스마트시티는 설계돼야 한다.
2000년 초·중반 유비쿼터스 도시는 미래형 도시로 각광 받았다. 실물 기반 시설에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하는 게 대유행이었다. 막대한 국가 예산도 투입됐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u-시티라는 명칭은 지속 가능하지 못했다. 방범과 방재 교통 위주로 기술 진화를 했을 뿐이다. u-시티는 스마트시티와 어떻게 다른가. 즉답이 쉽지 않다. 앞으로 추진되는 스마트시티 조성은 u-시티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로봇의 배달 실패 사례와 자율주행차 교통사고는 스마트시티 구축에 나서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정부 지자체는 물론 아파트 건설사, 통신사, 배달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신도시를 설계해야 할 당위성을 제시한다. 프로토콜 표준화, 모바일 인터넷 환경 구축, 클라우드 컴퓨팅 산업이 육성된다면 끊어짐 없는 생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스마트시티는 주민이 삶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즐기는 플랫폼이어야 한다. 스마트시티라는 초연결 사회는 '사회 약속'이라는 토대에서 건설돼야 한다.
김원석 성장기업부 데스크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