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대(5G) 이동통신 망 중립성 논의가 급부상한다.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망 중립성 원칙이 5G 시대에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세계 최초 5G 상용화 이전에 제도를 마무리하자는 요구다. 망 중립성 논의를 이념·명분과 분리해 기술·경제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5G 기술과 맞지 않는 망중립성 원칙
망 중립성 원칙 개정 요구는 5G 기술이 이전과 다르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5G 기술 자체에 차별 혹은 차이를 내포해 차별을 금지한 현재 망중립성 원칙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5G는 초광대역 주파수를 잘게 쪼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을 사용한다.
서비스마다 요구하는 속도나 저지연성이 다르다. 일반 통화나 포털 검색 등은 5G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다. 반면, 생사를 다투는 민감한 서비스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장 빠르고 지연이 없는 통신을 제공해야 한다.
40차선 고속도로에 비유하면 굳이 모든 차선 제한속도를 똑같이 유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긴급차량이나 특수목적차량을 먼저 보내도 나머지 차선을 넉넉히 이용할 수 있다.
5G에서도 일반 트래픽 처리에 문제가 없다는 전제 하에 자율주행차, 원격진료 같은 '초민감서비스'에 우선권을 주자는 의미다.
현재 국내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에서는 이같은 트래픽 처리가 불법인지 합법인지 모호하다. '합법적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의 불합리한 차별 금지'라고만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망중립성은 하나의 정책”이라며 “정부가 5G 시대에 걸맞는 망중립성 개념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5G 시대 지향점과 부합해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 중립성 원칙을 폐지하는 건 망 사용자 중에는 엄청난 트래픽을 유발하는 사업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업자도 있기 때문에 망 사용료 차별을 인정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는 망 사업자의 5G 등 새로운 투자를 유도,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기 부양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아지트 파이 FCC 위원장은 “망중립성 규제 완화로 투자를 늘릴 유인이 커진다”면서 “기가인터넷과 5G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향점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5G 시대 망중립성은 투자, 고용, 내수, 산업 활성화 선순환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문가들은 5G 시대 기술적 특성을 감안, 트래픽 많이 유발하는 사업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되, 그렇지 않은 기업에 대해선 망 중립성을 적용하면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망 사업자가 초민감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사업자에게 5G 망품질(QoS)을 보장하고, 적절한 이용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망 사업자는 고도화된 망 제공에 따른 추가 이익을, 인터넷사업자는 초민감서비스 제공에 따른 성장동력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는 추론이다. 기존 망 중립성의 근본 이념은 계승하면서도 5G 시대의 특화 서비스 제공, 기술과 산업의 변화를 반영하는 게 골자다.
◇불필요한 논란 종식할 때
5G 시대에 맞는 망중립성 원칙을 모색하는 논의가 이념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술·경제적으로 명확히 측정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문제를 제기하는 데 대해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막연한 불안을 조장하거나 호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게 '망중립성이 사라지면 개방·혁신도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통신사가 트래픽을 통제함으로써 정보 전달과 유통을 차단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통신사가 자유민주주의 기본 가치를 훼손할 목적으로 트래픽을 차단하거나 통제한 사례는 자유국가에선 알려진 바가 없다.
오히려 뉴스를 왜곡하거나 댓글 조작, 검색결과 조작 의혹을 받는 것은 인터넷 포털이나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지금까지 국내외에 알려진 망중립성 분쟁 사례는 과도한 트래픽 유발에 따른 사업자간 갈등이 대부분이다.
LG파워콤-하나TV 대용량 트래픽 분쟁(2006년), SK텔레콤-카카오톡 트래픽 분쟁(2011년), KT-삼성전자 스마트TV 트래픽 분쟁(2012년)이 국내 대표 사례다.
미국에선 인터넷전화(VoIP)를 차단해 물의를 일으킨 유선사업자 매디슨 리버(2005)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일반 가입자에게 피해를 끼쳐 망중립성 논쟁을 촉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가입자 4만명에 불과한 사업자 사례가 부풀려졌다는 비판도 있다.
FCC는 “망중립성 규제 완화가 중소기업에 불리할 것이라는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면서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트위터 등 거대 기술기업은 모두 2015년 강력한 망중립성 규제가 도입되기 이전 성장한 업체”라고 강조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