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금지 명령을 내렸다.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브로드컴이 지난해부터 추진한 퀄컴 적대 인수합병(M&A)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브로드컴 인수 의사를 밝힌 인텔 M&A 계획도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등 미국 주요 매체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할 수 없다는 금지 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명령서에서 “브로드컴이 퀄컴에 지배력을 행사하면 미국 국가 안보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면서 “퀄컴 인수 제안을 금지하고, (미국 안보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인수와 합병 제안도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은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권고에 따른 것이다. CFIUS는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하면 연구개발(R&D) 비용을 줄여 중국 화웨이 등 외국 경쟁사와 차세대 무선기술 개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CFIUS는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하면 국가 안보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조사하겠다며 지난 6일로 예정된 퀄컴 주주총회를 30일 연기하라고 명령했다. 브로드컴은 지난해 11월 퀄컴에 1300억달러(약 140조원) 규모의 인수를 제안했다. 퀄컴이 이를 거절하자 이사회 교체 카드를 꺼내들고 적대 M&A를 추진할 작정이었다.
이번 명령에 따라 브로드컴은 인수 제안을 즉시 폐기해야 한다. 이날 퀄컴은 “대통령 명령에 따라 브로드컴이 지명한 모든 이사 후보는 실격 처리된다”고 밝혔다. 브로드컴은 미국 정부의 국가 안보 우려에 '강력하게 동의하지 않는다'는 짧은 입장을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브로드컴이 퀄컴 인수를 노리고 미국으로 본사를 이전할 계획을 밝히는 등 넉 달 동안 공들여 온 작업이 끝내 무산됐다고 평가했다.
주요 외신은 퀄컴이 미국 정부의 도움으로 브로드컴의 적대 M&A 위협에서 탈출했지만 주주를 달래기 위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NXP 인수 완료 등을 통해 눈에 띄는 실적 개선 추이를 보여 주지 못하면 앞으로도 이 같은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퀄컴은 적대 M&A를 막기 위해 올해 수익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이 때문에 M&A는 피했지만 경영진의 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M&A를 금지한 것이 퀄컴이 추진하고 있는 NXP 인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가 안보 문제는 중국 기업을 겨냥한 것이어서 중국 정부가 퀄컴의 NXP 인수 승인에 부정 태도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퀄컴으로선 적대 M&A 불발이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