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필수설비란 물리력으로 복제가 불가능한 설비로, 광케이블·관로·전주를 통칭한다. 필수설비 공동활용은 통신사업자 간 중복 투자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경쟁은 극대화하고 소비자 이익은 최대화하기 위한 제도다.
사업자 간 유불리는 차치하고 5세대(5G) 이동통신 조기 상용화는 물론 당초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를 제대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세계 각국이 투자 효율성을 제고하고, 경쟁 촉진을 위해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를 수정하는 등 사실상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과기정통부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 개선에 즈음해 주요 국가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상〉영국, 필수설비 대가 최대 52% 낮추고, 현황은 온라인 공개
영국 통신 규제기관 오프컴(Ofcom)은 지난 2월 '광대역 초고속인터넷 활성화 정책'을 확정, 발표했다.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을 현재 3%에서 2020년까지 20%로 높이겠다는 의지다. 정책 핵심은 브리티시텔레콤(BT) 자회사 '오픈리치'의 필수설비 개방이다. 필수설비 개방 없이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제고가 불가능하다는 게 오프컴의 판단이다.
오프컴은 오픈리치 필수설비 제공 절차를 대수술한다. 필수설비 임대 허가 절차를 간소화, 경쟁사가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오픈리치가 보유한 맨홀에 경쟁사 통신장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오픈리치는 필수설비 현황을 정확하게 반영한 지도를 제작하고 온라인에 공개하도록 했다. 필수설비 운영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회계 자료를 오프컴에 제공해야 함은 물론이다.
오프컴은 필수설비 제공 대가도 낮춘다. 연간 관로 제공 대가는 m당 0.6파운드에서 0.29파운드로 52% 인하했다. 전주도 개당 8.85파운드에서 5.74파운드로 35% 인하했다.
오프컴은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 개선 취지를 '효율 투자 장려'라고 소개했다. 필수설비 공동활용이 후발 사업자의 '무임 승차'로 이어져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논리를 반박했다. 오프컴은 2016년에 10년마다 발간하는 '통신시장 전략적 재평가' 보고서에서 앞으로의 10년 목표를 '속도 1Gbps 이상 광대역인터넷 전국망 구축'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서는 BT 필수설비 공동활용이 필수라고 적시했다.
오프컴의 조치는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에도 실효성이 낮다고 판단한 결과다. KT와 마찬가지로 국영 통신사로 출발해 민영화된 BT는 영국 통신 인프라를 사실상 장악했다. 후발 사업자와의 경쟁력 차이가 현저하다. 영국은 이 같은 경쟁력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2006년 BT 필수 설비 운용 사업부를 분리, 오픈리치를 설립하고 2010년부터 필수설비 제공을 의무화했다. 그럼에도 오프컴은 오픈리치가 경쟁사에 엉뚱한 필수설비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빌려 주는 절차를 지나치게 경직된 방식으로 운영, 사실상 공동활용이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오프컴의 필수설비 공동활용 의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에 앞서 2016년 7월 오픈리치와 BT의 법정 분할을 의결했다. 독립 이사회를 둔 분리 회사를 만들라는 것이다. 오픈리치 이사회 구성원은 BT와 무관한 인사로 선임하되 오프컴과 협의 이후 임명해야 한다. BT 소유권을 인정하면서도 운영을 완전 분리하려는 시도다. 2010년 이후 필수설비 제공 제도를 운영했지만 성과가 없는 게 BT '영향력' 때문이라며 오픈리치 독립성을 키우려는 조치다.
샤론 화이트 오프컴 의장은 “통신 시장 경쟁을 극대화하기 위해 통신 산업 구조 근본을 10년 안에 개편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만약 이번 조치로 오픈리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오픈리치와 BT 소유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수설비 제공대가 인하 방안(자료 : 오프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