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07>혁신 응력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미국 오리건주립대 크리스 골드핑거 교수는 한 학술대회에 참석해 있었다. 일본 도쿄 근처 가시와시에 새로 지은 교정은 첨단 건물로 깔끔했다.

오후 2시 45분을 지날 즈음 아주 약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웃기 시작한다. 지진학회 도중에 지진이라니. 다들 시각을 확인했다. 지속 정도가 리히터 규모 정도를 대략 말해 준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60초가 지나자 농담이 멎었다. 90초가 지나자 건물 밖으로 향하는 잰걸음이 바쁘다. 2분째, 건물 위에 세워진 깃대가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3분을 넘겨 4분째, 누군가 휴대폰을 가리켰다. 헬리콥터에서 찍은 쓰나미 영상이 흘러나왔다. 600년 가까이 지각판 경계에 쌓여 있던 응력은 이날 이렇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혁신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것에 어떤 특별한 조건이 있을까.

스콧 커스너에게 이것만큼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오랫동안 많은 최고경영자(CEO)의 자문에 응해 왔다. 손에 잡히는 뭔가를 보여 주면 믿겠다는 말이 되돌아오곤 했다. 실체가 있다면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커스너는 두 사례를 보자고 한다. 첫 번째는 코넬테크(코넬공대)라고 부르는 콤플렉스다. 코넬대가 만들었으니 캠퍼스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구글이나 픽사를 학교 안에 만들고자 했다. 위치도 뉴욕 맨해튼 근처로 잡았다. 혁신 뉴욕을 꿈꿔 온 당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이 공을 들였다. 공사 기간 7년에 8억달러가 들어간, 그야말로 최첨단 시설이다. 커스너는 여기에 가 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혁신이 손에 잡히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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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한 곳이 더 있다. 이곳 이름은 '더 개리지'. 차고다. 맨해튼과 롱아일랜드를 끼고 이스트강 위에 서 있는 코넬테크와는 사뭇 다르다. 노스웨스턴대 캠퍼스 한 구석에 있던, 오래 되고 퀴퀴한 냄새가 나기 마련인 주차장 건물이다. 이곳에 대충 페인트 칠을 하고, 합판으로 가벽을 세웠다. 바닥의 노란색 주차선마저 그대로다. 지금 이곳은 매학기 60여명의 학생들이 창업을 하는, 내로라하는 인튜베이팅 공간이다.

커스너는 묻는다. 당신은 어느 곳에서 혁신을 보게 되느냐고. 공교롭게 차고는 혁신과 가깝다.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 차고였고,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의 공간이기도 했다. 월터 디즈니의 첫 필름 스튜디오, 할리데이비슨의 첫 조립창, 윌리엄 휼렛과 데이브 패커드에게는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367번지의 나무차고가 있었다. 정작 잡동사니로 어수선하고 실상 텅 비어 있기 마련인 그곳에서 혁신은 시작됐다.

놀랍게도 코넬테크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캠퍼스 중심부에는 브리지라는 이름의 건물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칸막이가 없습니다.” 어찌 보면 결국 코넬테크가 지향한 모습도 차고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많은 경영자가 혁신을 보여 달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무의미할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그 언어가 없을 때 만져지지 않는다. 그것이 뭐냐는 되물음만 남는다.

커스너는 되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혁신은 어쩌면 '평범을 넘어선 것'(Extraordinary)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평범한 곳'(Ordinary)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어쩌면 더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고, 케케묵고, 군내 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혁신에 가깝지 않을까.

마치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응력에 지축이 깃대처럼 흔들리던 그날들처럼.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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