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하이 마야(Maya), 굿바이 짐(Jim)...보험시장에 뛰어든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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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가입은 복잡하다. 청구에도 수십종의 서류가 필요하고, 유관 상품도 수백종이나 된다. 자신에게 맞는 보험 상품을 고르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대부분 전문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거나 안내를 받는다.

그런데 최근 십수년 동안 지속된 보험 설계 업무를 로봇과 스마트기기가 대체하는 혁신 프로젝트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인슈어테크 바람이다.

인슈어테크(InsueTech)가 떠오른 배경은 명확하다.

보험사는 빠르게 변화하는 다양한 규제와 거시 경제 요인뿐만 아니라 하루가 멀다 하고 달라지는 소비자 취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만큼 소비자가 똑똑해졌다는 말이다.

변화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고, 범위도 다양하다.

생명보험 업계는 지난 30여 년 동안 안정된 변화의 흐름을 겪었다. 정부 규제나 세금 체계가 바뀌고 새로운 유통 모델과 기술 진보,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지만 그때마다 유효한 대응책을 마련해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디지털 시대가 불러온 변화와 도전은 더 엄청나고 근본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인슈어테크가 노리는 영역

보험 산업은 크게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보험회사, 판매원(설계사·에이전트), 재보험회사다. 이 가운데 인슈어테크가 타깃으로 노리는 것은 판매원이다.

판매원 대부분은 소비자 변화에 능동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불완전 상품 판매가 많고, 리스크도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에 챗봇과 빅데이터 기반 인프라는 객관적이고, 현명하다. 강매를 하지도 않고 개별 정보에 기초해 최적의 보험을 제안한다.

사람이 아닌 스마트홈,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새로운 인슈어테크 서비스가 등장했다.

카스코는 각종 보험 상품을 커스터마이징한 플랫폼으로 개발했다. 인슈어테크 플랫폼을 제공, 보험회사와 판매원 대상으로 한 기업간거래(B2B) 모델을 상용화했다.

핏센스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과 빅데이터를 기초로 건강보험, 생명보험을 개인화해 B2B로 제공한다. 루스트는 피해 보험회사에 스마트홈 기기를 제공한다. 누구나 화재를 조기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코쿤도 주택보험 회사에 감시용 스마트홈 기기를 제공하고, 오스카는 돌발성 발병에 대비해 제휴한 의사가 모바일로 진료해 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심지어 공유경제 시대 보험도 출현했다. 세이프셰어는 급성장하고 있는 공유경제 기업 대상으로 차세대 보험 솔루션을 개발, 제공한다.

이들 인슈어테크 기업의 공통점은 전통 보험의 상식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디지털 채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모델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소비자 태도 변화 연구에 활용하면 보험 업계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AI, 빅데이터, 스마트홈을 채널로 활용해 소비자 태도를 변화시킨 것이다.

고객이 어느 시점에서 태도가 왜 달라지는지 미리 알 수 있게 되면 '미래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은 보험업계에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줬다. 굳이 수백명의 설계사를 두지 않아도 디지털 기술을 보험 유통 경로로 삼는 새로운 실험이다.

◇하이 마야, 굿바이 짐!

AI 챗봇으로 보험 산업의 상식을 파괴한 기업도 등장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기 위해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이 기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인슈어테크 성공 기업 레모네이드다. 이 기업을 소개하는 이유는 전통의 보험 비즈니스 모델을 최신 기술과 수익 투명성으로 변혁시켜서 성공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시대에 걸맞은 보험회사의 모습을 가장 잘 재정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기업의 보험 상품은 재산보험과 상해보험이다. 타깃은 임차인과 집주인이다. 다시 말해서 레모네이드는 부동산 관련 보험회사, 화재보험과 임차인 배상보험을 취급한다.

혁신 모델을 인정받아 지금까지 네 차례 6000만달러를 조달했다. 이 기업 투자자는 글로벌 보험사 알리안츠 시티벤처캐피털(CVC)인 알리안츠벤처스, 구글벤처스가 이름을 올렸다.

레모네이드 상품 보험 계약은 단 90초, 보험 청구는 3분 만에 끝난다.

AI 기반 챗봇이 업무를 수행한다. AI가 방대한 정보를 분석, 90초 만에 계약 프로세스를 완료한다. 여기에 모바일로 계약 서류를 대체하고, 본인 인증도 완료한다.

보통 며칠이 걸리는 보험금 청구도 3분밖에 안 걸린다.

보험 신청은 마야(Maya), 보험 청구는 짐(Jim)이라는 가상비서(AI)가 각각 맡는다.

부동산 보험 신청을 예로 들어 보자.

가상 비서 마야와 채팅으로 보험 신청을 개시한다. 주소를 입력하면 주소 선택 후보를 자동으로 표시해 준다. 주소 데이터베이스(DB) 빅데이터를 AI가 분석한 결과다. 주소를 확정하면 맵에 위치 정보를 표시하고, 집주인인지 임차인인지 동거인인지 등 세부 질문을 마야가 한다.

이와 함께 타사 보험에 가입했는지를 확인한다. 만약 타사 보험에 가입한 경우 전환은 레모네이드가 대행해 주고, 환금도 해 준다.

마지막으로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AI가 입력 데이터를 분석한다. 건축 연수와 내구성, 해안으로부터의 거리, 소방서 근접도 등을 별표로 평가한다. 신청서에 모든 내용이 기입되고, 결재하면 보험 신청이 완료된다. 이 과정은 단 90초다.

결국 디지털 시대에 보험 업계가 살아남는 길은 디지털 기술을 껴안는 방법밖에 없다. 시장과 소비자 요구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면 새로운 경쟁자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고객을 빼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