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이 연일 성황이다. 개회식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남북 간, 북미 간 긴장을 완화하는 '평화 전도사' 역할도 한다. 우리 선수들의 열정 넘치는 경기는 성적을 떠나 안방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안겼다.
보안업체 직원 숙소에서 출발한 집단 식중독 탓에 오점을 남겼다. 겨울 불청객 노로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확진자와 의심 환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격리 사태까지 벌어졌다. 평창 곳곳엔 예방을 당부하는 안내문이 붙었다. 말 그대로 '초비상'이다.
노로 바이러스는 겨울철 느슨해진 긴장을 파고드는 불청객이다. 여름 질병이라는 편견이 강한 식중독은 겨울에도 자주 발생하는데, 십중팔구 노로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감염되면 1~2일 잠복기를 거쳐 구토나 설사, 매스꺼움이 나타난다. 미국에선 노로 바이러스 감염증을 '겨울철 토하는 병(winter vomiting bug)'으로 부르기도 한다.
두통, 발열, 오한, 근육통 같은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묽은 설사가 하루에 4~8회 발생한다. 면역력이 약한 경우 탈수증 같은 합병증이 올 수 있다. 증상은 2~3일 지속되다 치료 없이도 호전된다. 치사율이 0%로,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다. 별도의 백신이나 치료제도 없어 회복을 기다리는 게 보통의 대응이다.
그럼에도 노로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은 높은 전염성과 생존력 때문이다. 노로 바이러스는 겨울부터 초봄, 기온이 낮은 계절에 기승을 부린다. 영하 20℃ 이하에서도 살아남고, 극소량으로도 감염을 일으킨다. 60℃에서 30분간 가열해도 감염성이 유지된다.
여기에 겨울철 느슨해진 경계심, 면역 저하가 겹치면 폭발적인 확산력을 갖는다. 1차 감염은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섭취했을 때 일어난다. 다른 식중독균과 달리 신체 접촉만으로도 2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감염 환자의 분비물이나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바이러스를 옮긴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문고리나 물건 손잡이마저 소독해야 하는 이유다.
노로 바이러스 감염증은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치명적이진 않지만, 빠른 확산성 때문에 올림픽 같은 대규모 이벤트에는 큰 악재다.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실제 사고가 터졌다. 선수들이 집단으로 감염, 일부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아이작 마콸라(보츠나와)와 웨이드 판니커르크(남아공) 간 200m, 400m 라이벌전도 무산됐다.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질병관리본부에 초비상이 걸린 것도 이런 사태를 우려해서다. 만약 선수단에서 감염자가 나오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선수 컨디션도 문제지만 대회 일정 자체가 흐트러진다. 회복된 선수조차 출전할 수 없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마콸라는 400m 경기 때 몸이 회복됐지만 격리 조치에 의해 경기에 임하지 못했다.
노로 바이러스 감염증은 겨울철에 흔한 질병이다. 별다른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예방이 최선이다. 개인 위생 관리가 첫째다. 질병관리본부는 30초 이상 비누를 이용해 손 씻기를 당부했다. 과일과 채소는 냉장고에 씻어 넣어뒀다 해도 먹기 전 흐르는 물에 다시 씻어야 한다. 명절 음식은 햇볕 아래서 세균이 증식할 수 있기 때문에 2시간 안에 냉장 보관하는 게 좋다.
노로 바이러스는 85~100℃ 이상에서 1분 이상 가열하면 없앨 수 있다. 어패류를 포함한 모든 음식은 익혀먹어야 한다. 조리기구, 식기도 세척한 뒤 끓는 물이나 염소계 소독제로 소독하는 게 좋다. 주변에 환자가 발생했을 땐 화장실, 변기, 문 손잡이 등 손이 닿을 만한 모든 곳을 소독해야 한다.
감염됐을 때는 보존적 치료가 이뤄진다. 스포츠 음료, 이온 음료로 부족한 수분을 공급하고 탈수를 막는다. 설탕이 많이 함유된 음료는 좋지 않다. 심한 탈수가 올 때는 정맥주사로 수액을 공급하기도 한다.
노로 바이러스 전염성은 증상이 발현되는 시기에 가장 강하고 회복 후 3일에서 2주까지도 전염성이 유지된다. 감염자는 회복 후에도 3일간은 음식재료를 취급하거나 요리해서는 안 된다. 환자를 간호한 사람도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으므로 외출을 삼가는 게 좋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