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는 길을 잘 본 후 따라해보세요.”
교실 바닥에 붙은 바둑판 같은 격자무늬 판 위로 로봇이 움직인다. 로봇 시연이 끝난 후 치매예방프로그램 참가자가 로봇이 지나간 자리를 기억해 따라간다. 실수 없이 제대로 완료하자 다른 참가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로봇이 “어르신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칭찬을 하자 교실은 웃음으로 가득찬다.
서울 강남구치매지원센터의 로봇을 이용한 치매예방프로그램 수업은 로봇과 인간이 함께하는 미래의 학습현장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위탁운영하고 있는 강남구치매지원센터는 지역주민 대상 치매예방프로그램 수업에 교육용 로봇 '실벗'을 투입해 호응을 얻고 있다.
로봇은 4차 산업혁명 주역으로 제조·교육·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의료분야에서 환자 간호나 노인의 대화상대로 주목받고 있다.
실벗은 신경심리사와 함께 일반 참가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단순한 암기 문제에서부터 몸을 이용해 해결하는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제시하며 수업참가자 관심을 유도한다. 참가자는 로봇 칭찬 한마디에 웃음을 터뜨리며 교육시간 내내 주의력을 떨어뜨리지 않고 수업에 집중한다.
한 치매예방프로그램 참가자는 “실벗이 칭찬해주고 못해도 괜찮다고 하면 어려운 문제도 다시 도전할 힘을 얻는다”며 “예전보다 머리가 맑아졌다는 느낌을 받아 수업이 즐겁다”고 말했다.
실벗을 이용해 치매예방교육 인지훈련(cognitive training)을 하고 있는 조진주 삼성의료원 신경심리사는 “어르신이 로봇에 거부감 없이 아주 재미있어 한다”라며 “수업 집중력과 교육효과를 높이는데 실벗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벗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8년 전부터 개발을 시작해 KIST에서 분사한 로보케어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삼성의료원이 교육콘텐츠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했다
강남구치매지원센터 치매예방프로그램은 주 2회(1회 1시간) 3개월 코스로 이뤄진다. 교재를 활용한 교육과 로봇을 활용한 교육이 동시에 진행된다.
실벗 치매예방 프로그램은 로봇이 가진 특장점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다양한 인지훈련 콘텐츠가 17개에 이른다. 다양한 뇌부분을 이용하고 자극할 수 있는 콘텐츠다.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등 각 인지영역에 특화된 두뇌활동 문제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뇌기능이 활성화된다. 실벗 훈련 프로그램은 단순히 지시하거나 내용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실벗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설명하고 이끌어간다.
실벗을 개발한 로보케어 강인구 마케팅이사는 “실벗은 단순히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학습시키는 기계가 아니다”라면서 “함께 이야기하고 격려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친구”라고 말했다.
수원시에서도 실벗을 활용한 치매예방사업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1월부터 수원시 영통구보건소 수원시치매지원센터에서 실벗이 운용 중이다. 운용결과 로봇을 이용해 훈련을 받은 집단이 기억력과 주의집중력은 증가한 반면 비관적 사고, 동기 등에서 우울증상이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로보케어는 올해부터 해외시장 개척도 본격화한다. 강인구 이사는 “장기적으로 실벗을 세계 시장에 수출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최근 아랍에미레이트 바이어로부터 이달말 개최되는 아랍헬스전시회 초청을 받아 참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천명했다. 치매 문제를 개별 가정 차원이 아닌 국가 돌봄 차원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치매는 일단 발병하면 치료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예방이 최선의 방법이다. 실벗은 임상실험을 통해 검증된 세계최초의 치매예방로봇으로서 국내외에 보급 중에 있다. 임상실험을 통해 검증된 세계최초 치매예방로봇인 실벗도 치매국가책임제에 힘입어 보급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