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이 부평공장에 시험 가동한 협동로봇을 철수한다. 국내 안전 규정에 막혀 무용지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GM은 부평공장에서 철거한 협동로봇을 해외 공장으로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 지근거리에서 작업을 돕는 협동로봇은 해외에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협동로봇' 개념을 정립하지 못한 데다 세부 안전 규정이 마련되지 않아 일선 현장에서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산업로봇 안전 규정을 세분화해 급성장하고 있는 협동로봇 시장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국내 부평공장에 들여온 협동로봇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한국GM은 협동로봇을 국내로 들여왔지만 국내 안전 규정 때문에 활용하지 못했다. <2017년 12월 22일자 참조>
한국GM은 부평공장 내 시험 공간을 마련해 협동로봇 한 대를 배치했다. 실제 공정에 도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전 배치 전에 공정 적용 시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초 한국GM은 협동로봇을 자동차 유리를 조립하는 공정에 투입, 작업자를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협동로봇을 추가하면 작업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해당 공정은 현재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폭스바겐 등 해외 유명 자동차 제조사는 수년 전부터 협동로봇을 생산 라인에 배치해 생산 효율성을 높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협동로봇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을 그대로 적용, 사실상 협동로봇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안전사고를 우려해 산업용 로봇 주변에 안전펜스를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협동로봇은 사람과 로봇이 가까이에서 작업하는 로봇이라는 점이다. 안전펜스를 설치하면 근로자와 로봇 간 근접 협업이 어려워 무용지물이 된다. 한국GM이 협동로봇을 들여놓고도 활용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는 이 때문에 협동로봇에 맞는 새로운 산업 안전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협동로봇은 사람과 협업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고 가반 중량과 몸집을 줄여 안전사고 우려를 크게 낮춘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한국GM 협동로봇 철수 사실이 알려지자 '우려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세계의 산업 현장이 협동로봇을 중심으로 빠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실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협동로봇을 들여놓고도 기업이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서 협동로봇 수요가 위축될까 걱정”이라면서 “더 큰 문제는 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국내 협동로봇 제조사는 납품 실적 레퍼런스를 쌓기가 매우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부처는 업계 요구가 거세지자 협동로봇 안전 기준 마련에 착수했지만 안전 기준 마련에는 시간이 많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