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10년간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앙받았다. 애플만의 운용체계를 확보하고 혁신 기술로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했다. 소비자 감성을 사로잡았고, 자기 정체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이용자 문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애플의 폐쇄적 방식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애플의 폐쇄성은 오만과 독선으로 비춰질 정도다. 일례로 애플 운용체계(iOS)의 비호환성은 악명이 자자하다. 노키아의 발목을 잡은 심비안의 폐쇄성 못지않다는 것이다. 호불호 등 평가가 엇갈리지만 분명한 건 애플이 10년간 신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다.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애플이 10년 만에 역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아이폰 작동 속도를 '의도적으로 저하시킨 애플의 이른바 '배터리 게이트'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애플은 2016년 12월부터 아이폰 운용체계 업데이트를 통해 배터리 잔량이 적거나 낮은 온도에서 아이폰 운영 속도를 떨어뜨리는 조치를 단행했다. 사전에 소비자 동의를 받지 않은 건 물론이고 명확한 사실 고지도 하지 않았다. 애플은 성능 저하 조치 사실을 숨기다가 외부의 해명 요구에 사실을 시인했다.
소비자는 즉각 분노했고, 행동으로 옮겼다. 미국에선 애플 시가총액이 넘는 1000조원대 집단소송이 접수되고, 프랑스에선 형사 소송까지 제기되는 등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되고 있다. 소비자 분노를 걷잡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도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례적으로 사실을 인정한 데 이어 사과하고, 소비자에 대한 보상도 내놓았다. 하지만 애플은 오해가 있다며 소비자를 위한 조치였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애플의 이 같은 태도는 소비자의 분노와 배신감이 아이폰 성능 저하보다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그리고 사실을 은폐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됐다는 걸 애써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애플에 배신당했다'는 비난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애플에 우호적이었던 미국 IT매체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애플의 보상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앞으로 1년간 보증 기간이 끝난 아이폰 배터리 교체 비용을 79달러에서 29달러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소비자 반응은 냉담하다. 성능 저하로 불편을 겪은 소비자에게 무료로 배터리를 교체해 주지는 못할망정 애플이 50달러 깎아주며 선심 쓰는 것이냐며 비꼬고 있다. 애플의 인정과 사과 이후에도 파장이 일단락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폰 게이트 후폭풍이 어느 정도일 지 예측하는 건 무리다. 집단소송에 따른 금전적 손실은 차치하고 소비자 신뢰 상실과 브랜드 가치 훼손 등 애플이 감수해야 할 타격은 상당할 전망이다. 이보다 심각한 건 소비자가 애플의 폐쇄성 등 비밀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독보적 브랜드에도 흠집이 났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애플은 이제부터라도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차제에 비밀주의도 폐기해야 한다.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애플이 10년간 쌓은 '신뢰와 품질'이라는 공든 탑이 흔들리고 있다.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도록 내버려 둘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흔들리는 곳을 보완할 지는 전적으로 애플 몫이다. 애플의 앞으로 10년을 가름하는 분수령이다.
김원배 통신방송부 데스크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