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트럼프 대통령의 '질서 파괴'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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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상업 도시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자 세계는 벌집 쑤신 듯이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중동 평화의 노력을 가로막고, 지역을 불안정 속으로 몰아넣는 횡포라고 비난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넓이 1㎢가 채 안 되는 옛 시가의 일각을 둘러싸고 기나긴 역사 속에서 수없이 충돌을 반복해 온 곳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옛 시가를 포함, 동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예루살렘을 영원·불가분의 수도로 선언했다. 반면에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장래 독립 국가의 수도라고 주장한다. 1993년 '팔레스타인 잠정 자치 선언'(오슬로 합의)는 이스라엘과 장래의 팔레스타인 국가가 공존하며, 예루살렘의 귀속은 당사자 교섭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우리나라도 예루살렘 문제는 2국가 공존의 원칙에 입각한 평화 교섭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방침을 지켜 왔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을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대립을 부채질하는 이러한 위험한 결정을 했을까. 미국 정치 분석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로 유대교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수석고문의 영향을 지적한다. 러시아와의 유착 의혹인 '러시아 게이트'에 관여한 쿠슈너에 대한 수사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친 이스라엘 경향이 강한 보수층의 환심을 사서 정권의 인기 회복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대계 미국인은 약 6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윤택한 자금과 조직 차원의 로비 활동을 뒷받침으로 하는 강력한 정치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로 저공비행하고 있는 만큼 미국 대사관 이전을 서둘러 실행에 옮김으로써 지지율 회복에 나서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의도는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 성지를 정치 도구화해서는 안 되며, 분쟁의 땅 중동에 새로운 불씨를 지피려는 것은 미국에도 불이익이 된다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가 세계 37개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제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을 신뢰할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평균 74%에 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59%),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53%)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을 더 큰 시각에서 보면 트럼프 외교·경제 정책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지구온난화 국제 협약인 '파리협정'의 탈퇴가 상징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기존 질서와 룰을 깨뜨리고 있는 양상이다.

로버트 졸릭 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총재는 최근 미국 언론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익보다 정치성 의도를 우선시하면서 위험한 '벼랑 끝 정책'에 매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 행보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가을 중간 선거를 앞두고 보호무역, 이민 제한, 고립주의라는 3개 테마를 바탕으로 지지 기반 구축에 전력투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제일주의에 공감하는 일정한 여론이 존재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기존 질서와 룰을 깨뜨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 행동은 많은 국가의 외교·경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그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이제 전 지구 차원의 시각에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앞으로 야기될 중동 사정의 악화가 현재 배럴당 60달러 안팎에서 유지되고 있는 유가를 어떻게 흔들고 석유 패권이 어떻게 변할지, 이런 변화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그 인과 관계를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지난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서 봤듯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주도의 질서가 생겨나면서 미국의 영향력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현실을 간파해야 한다.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결정은 2018년에 밀려 올 세계 조류를 미리 볼 수 있는 좋은 실마리가 되고 있다.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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