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94> 혁신 생태계 다루기

카뷰레터(Carburetor). 이것은 내연기관 필수품이다. 액체 연료를 공기와 섞어 기화시키는 장치다. 1980년 초반에 전자제어분사장치(EFI)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2차 오일 쇼크 영향이 채 가시지 않던 시절이다. 누구나 연비에 민감했다. EFI가 해답으로 보였다. 조만간 카뷰레터는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카뷰레터 연비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매년 갤런당 1마일씩 꾸준히 나아진다. 으레 그렇듯 새 기술이 등장하면 옛 기술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카뷰레터로 불리던 이것은 그렇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1992년 대부분 자동차가 EFI를 채택하게 될 때까지 6마일이나 나아졌다. 쉽게 끝날 것 같던 새 기술과 옛 기술의 다툼은 이렇게 무려 10년을 이어 간다.

종종 새로운 기술은 절대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버나 트위터를 보라. 하루아침에 시장을 지배한다. 이런 다툼이 쉽게 끝나지 않을 때도 있다. 왜 그럴까. 어떤 차이가 있을까.

론 애드너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와 라울 카푸어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기술생태계'란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기업은 예상 못한 위기를 맞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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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삼성전관이 개발한 HDTV 용 브라운관 시제품

고화질(HD) TV를 한번 보자. 이 기술은 1980년에 개발된다.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맞는 고화질 영상물이 없다. 고화질 카메라도 필요했다. 기술 표준 문제가 떠올랐다.

새 제작 설비며 편집 장치도 마찬가지다. 몇몇 시제품이 나왔지만 고가인 데다 상업성이 떨어졌다. 텔레비전과 영화 시장을 바꿀 혁신 기술이다. 소비자는 줄을 섰고, 시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옛 기술에 맞춰져 있는 생태계가 변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필요했다.

1994년 8월 첫 미국 시현이 이뤄진다. 첫 공식 방송은 1996년 7월에야 가능했다. 새 기술은 있었지만 가치 창조는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새 기술을 갖췄다면 세 가지 위험을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첫째는 실행위험(execution risk)이다. 제 시간에 시장에 제 기능 전달이 어렵다면 이것은 커진다.

두 번째는 공조위험(co-innovation risk)이다. HDTV처럼 다른 보완 기술이나 제품이 필요하다면 이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가치 구현은 어렵다. 상업 성공까지 먼 길이 남은 셈이다.

세 번째는 가치사슬위험(adoption-chain risk)이다. 새 기술이 고객에 닿는데 누군가 손을 거쳐야 할 때가 있다. 만일 이들이 새 기술을 이해하고 채택하기 어렵다면 내 위험도 커진다. 최종 고객에게서 거리가 멀수록 이 위험은 커진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요인과 시간이 커지는 셈이다.

이런 세 가지 위험이 크면 기업이 극복해야 할 일은 많아진다. 새 기술이 있다고 성공이 담보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가치 구현에는 복잡한 전략과 시간, 큰 투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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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옛 기술에 머물러 있는 기업 입장에서 보자. 당신이 아래 세 가지 질문을 긍정한다면 한판 싸움을 준비해 볼 만하다. 첫째 기술의 성능을 지금보다 더 높일 수 있는가. 둘째 생태계가 건강한가. 당신의 기술을 지지하는 여러 보완재가 있는가. 그럴수록 새 기술이 당신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셋째 새로운 기술로부터 빌려올 만한 것이 있는가. 그것으로 당신 기술과 생태계를 개선하라. 이 세 가지가 가능하다면 기술의 숨은 가능성은 더 크다. 마치 성능이 정체된 줄 알고 있던 카뷰레터가 또 한 번 혁신한 것처럼 내 기술은 다시 생기를 띠게 할 수 있다.

기업은 수익을 탐색하는 존재다. 어떻게든 기존 기술을 대체하는 새로운 혁신을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이런 대체 과정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조지프 슘페터는 이 과정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불렀다. 그로나 이 과정에서 새 기술이 항상 쉽게 자리를 뺏는 것은 아니다. 승패는 쉽게 갈라지지 않는다. 기업은 종종 성능이란 것에 매몰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은 성공을 앞두고 실패한다.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할 때 창조적 파괴는 쉽게 길을 보여 주지 않는다. 종종 혁신 기술은 잘못된 선택이란 함정에 빠진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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