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대규모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의 첫 관문인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간이 종전의 3분의 1 가량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기초·원천 기술 개발 사업은 비용·편익 잣대의 경제성 분석을 면제하거나 대폭 완화한다. 주무 부처는 기획재정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바뀐다. R&D 특성을 충분히 반영한 예타, 적시 투자가 보장되는 예타로 개선이 기대된다.
12일 관가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획재정부는 최근 국무조정실 중재로 마련한 국가재정법 개정 방향에 합의했다. 합의안은 현재 기재부가 쥐고 있는 예타 권한 중 R&D 사업 부문을 과기정통부에 위탁하는 게 골자다. 문재인 정부 공약과 정부조직 개편안 취지를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남겨둔 형태다.
앞으로 국가 R&D 사업의 예타는 과기정통부가 전담 수행할 전망이다. 대규모 건설 사업 등 나머지 국책 사업의 예타는 기재부가 그대로 수행한다.
과기정통부는 예타권을 넘겨받는 대로 절차·방법 개선에 착수한다. 평균 20개월 걸리던 예타 기간을 6개월로 줄일 방침이다. 기초·원천 기술 개발 사업 평가 때는 비용·편익 분석 비중을 대폭 낮추거나 면제한다.
예타는 500억원 이상이 투자되는 대규모 사업의 추진 타당성을 사전에 평가하는 제도다. 그 동안 R&D 예타가 지나치게 경제성 평가에 치중했고, 기간도 너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비용 대비 효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R&D 사업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 적기에 투자를 집행하기도 어려웠다.
R&D 예타 이관 논란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 불거졌다. 정부는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강화를 목적으로 과기정통부에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설치하고 예산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과기정통부가 R&D 예타를 수행하고, 기재부와 공동으로 국가 R&D 총 지출한도(실링)를 설정한다.
기존에는 기재부가 두 권한을 독점했다. 문 정부는 과기정통부, 과기혁신본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국가 R&D의 기획·평가·예산 배분을 모두 수행해야 한다고 봤다. 이를 위해선 기재부의 일부 권한을 떼어 내야 했다.
6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국가재정법 개정안,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기재부 반대에 부딪혔다. 과기법 개정안은 여야 합의가 원만했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기재부 반대로 상임위에서 발이 묶였다. 예타 이관을 둘러싼 이견이 첨예했다.
국무조정실까지 나선 중재 끝에 약 6개월 만에 두 부처가 합의에 도달했다. 애초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은 예타의 관할 변경을 명시했다. 합의안은 관할 변경 대신 '위탁'을 명시한다. R&D 예타를 과기정통부가 수행하되, 원 관할은 기재부임을 명시한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과기정통부의 예타 권한을 보장한다. 양 부처는 입법 대안 제출 때 위탁 범위를 명시하기로 했다. 예타 전문기관 지정, 예타 대상 선정, 실시, 결과 공개 등 제반 권한을 모두 위탁한다. 과기정통부가 예타 절차를 개선하는 게 가능하다. 향후 재정 위기 등 문제가 발생할 때 예타 관할을 다시 회수할 견제 장치만 남겼다.
이 같은 내용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법안 심사 때 입법 대안으로 제출될 예정이다. 기재위는 그 동안 양 부처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안 처리를 미뤄왔다. 두 부처가 중재안에 합의한 만큼 법안 처리 가능성이 높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예타 업무의 단순 대행이 아니라 권한 전반을 위탁하기로 했고, 위탁 범위에서 제외되는 권한은 없다”면서 “향후 R&D 예타를 수행하고 절차를 개선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