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에 대한 우려가 다시 제기됐다. 중국의 '중국제조 2025' 전략이 현지 진출을 미끼로 기존 기술 강국의 첨단기술을 빼내는 등 세계 통상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중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7일(현지시간) '중국의 기술 야심이 세계 통상질서를 뒤엎을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차이나머니가 어떻게 해외 첨단산업 기업의 핵심기술을 빼내고 있는지와 이에 대한 각국의 대응을 소개했다.
중국 정부가 2015년 내놓은 중국제조 2025 계획은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인공지능(AI), 로봇, 전기차 등 10대 첨단산업 부문에서 글로벌 수준의 대표 기업을 키워내고 국산화율 확대를 목표로 한다.
국가가 주도해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해 10대 첨단산업 부문에서 기술 부품 자급률을 현재의 0∼30%에서 70%까지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10대 부문 관련 자국 기업에 수십억달러 보조금과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외국 기업에는 세계 2위 경제 규모의 중국시장 진입을 미끼로 자국 기업에 핵심기술을 이전하라고 압박한다.
NYT는 중국이 외국 기업에 중국시장 진출을 허용하는 대가로 자국 기업과의 파트너십 또는 지적재산 이전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또 막대한 지원과 시장개방 등을 미끼로 외국 거대기업을 끌어들이며 국제통상법을 피해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미국 반도체 기업 AMD는 중국 협력사로부터 3억달러(약 3347억원)를 받고 반도체 디자인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기술을 이전해줬다.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 핵심기술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막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사를 피하기 위해 기술 매각보다는 중국 협력기업에 라이선스를 주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해간 셈이다.
중국 편법거래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시에 따라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통상법을 교묘히 피해 외국 기업의 핵심 기술을 빼가는 중국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유럽연합(EU)도 최근 유럽 내 전략 기업이 차이나머니에 속속 넘어가면서 기술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독일에서는 최대 산업용 로봇업체 쿠카(Kuka)가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Midea)에 인수된 이후 미국 CFIUS 같은 투자 감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EU는 외국 자본의 역내 기업 인수합병(M&A)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등 차이나머니의 무분별한 유입에 대한 경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투자 규제 계획은 첨단기술, 에너지 등 유럽의 전략사업 분야에 중국 자금 유입이 급증하면서 기술유출과 안보 위협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그러나 미국 기업은 미 정부가 중국 기업에 대한 감시와 규제를 강화할수록 결과적으로 손해를 입는 것은 자신들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 국제 통상법을 준수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기술 문제에 관해서는 WTO가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NYT는 분석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인 중국시장 진출길이 막히는 것도 문제여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미 상공회의소 제러미 워터맨 중국센터 대표는 “중국제조 2025 전략은 세계 전역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고부가가치 제조업 상품의 모든 비교우위, 미래기회 개념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만약 중국제조 2025 계획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미국과 다른 국가들은 중국을 상대로 석유, 가스, 쇠고기, 콩 등을 판매하는 미가공품 수출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