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대한민국 역사에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기억될 정도의 굵직한 사건이 이어진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공사 재개 권고 결정이 첫 번째다. 숙의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호평과 법률 근거 없이 기업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고 정치인에게는 선거 공약 파기를 정당화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엇갈리는 평가와 별개로 원전 공론화위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어떤 정책이든 장단점이 있는 것은 필연인 만큼 정책을 만들 때는 출발점에서부터 예상 결과에 대한 전문 분석, 평가 등 중장기 검토를 제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작스런 정책 추진 결과는 당사자는 물론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혼란과 갈등, 수천억원에 이르는 재산 피해와 세금 부담 등 사회 비용을 초래한다.
10월 국회 국정감사가 종료되면 통신 시장에 원전 공론화위에 버금가는 태풍이 몰아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보편요금제와 단말기 완전자급제 등 통신 시장의 근간을 뒤흔드는 강력한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법안 심사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보편요금제는 음성과 문자를 무제한 제공하되 월정액 데이터를 기본으로 제공하면서 가격은 현행과 비슷한 조건의 요금제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리도록 정부가 의무화하는 제도다.
이 법안은 그러나 자유 시장 경제의 기본 및 본질 영역이라 할 서비스 가격을 정부가 결정함으로써 기업의 재산권 행사를 지나치게 제약할 소지가 있다. 기본료 폐지 논란 당시에 제기된 기업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고유한 가격 결정권을 부당하게 제약함으로써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어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보편요금제가 트래픽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수십조원 규모의 네트워크 투자 동력을 상실케 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다.
보편요금제가 1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를 제공하면 대다수 가입자의 평균 데이터 사용량이 그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수렴하는 유인이 된다. 이통사는 한꺼번에 폭증할 트래픽을 버틸 수 있을 수준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만 하고, 이는 추가 설비 투자에 따른 비용 부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미 국내 시장에서 일부 이통사에는 네트워크 설비 투자가 줄어든 영향으로 올해 잦은 통신 장애와 서비스 오류라는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기존에 구축해 놓은 네트워크 등 설비가 데이터 사용량 증가분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더 잦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네트워크 투자 여력 감소는 곧 5세대(5G) 이통 서비스 안정성 저하로 이어져 국내 통신사들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등 경쟁 국가에서는 빠르고 안정된 융합 서비스의 선결 조건으로 막대한 네트워크 구축비용 마련을 위한 거대 통신사업자 간 인수합병(M&D)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경쟁 국가에 비해 국내 사용자가 빠르고 안정된 혁신 서비스를 접할 기회마저 빼앗길 수 있고, 이는 곧 통신 시장에서의 이용자 편익 저하 문제로 연결되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각종 융합 서비스 주도권을 놓고 각축전이 치열하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자동차 등 융합 서비스 상용화와 파생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위한 핵심은 방대한 데이터 트래픽의 수용 역량을 높일 망 고도화와 설비 투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거시 관점을 고려, 이용자들이 합당한 가격으로 최첨단의 열매를 향유할 수 있는 통신 정책을 추진해 나가길 바란다.
김진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한국IT법학연구소 부소장) kjuarea@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