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과학향기]나노기술 통한 암 진단과 치료 기술 빠른게 발전

몇해 전 미국 유명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한 배경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아직 암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유전적으로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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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선택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가렛 에반스 영국 맨체스터대 세인트메리병원 유방암발생예방센터 교수팀이 조사한 결과, 안젤리나 졸리의 신문 기고 이후 유전자 검사를 받고 가슴을 절제하는 여성 숫자가 급증했다. 그리고 그 숫자는 꾸준히 유지됐다. 이는 암을 조기에 진단하고 완전히 치료하기 어려운 현재 의료기술 수준에서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노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전보다 암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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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미국의 유명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적으로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출처: Gage Skidmore

#나노물질 이용해 정교하게 암 진단한다

유방암이나 구강암처럼 손이나 눈으로 이상을 느낄 수 있는 부위에 생기는 암은 상대적으로 발견하기 쉽다. 그래서 의심스러운 경우 조직검사를 통해 암세포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조직검사와 함께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 양전자단층촬영(PET) 그리고 혈액검사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종합적으로 암을 진단한다. 한 가지 방법으로는 암을 완벽하게 진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검사를 진행한다.

최근 과학자들이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나노기술의 역할은 각 기술의 진단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다. 예컨대 MRI의 경우 암세포가 있는지 없는지를 더 잘 알아보기 위해 조영제라는 화학물질을 환자에게 투여한 뒤 촬영한다. 암세포가 화학물질과 반응해서 더 밝게 나타나도록 하는 것으로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뚜렷하게 구분할수록 좋다. 이에 천진우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연구단장 연구팀은 2017년 나노입자 조영제를 개발해 이전보다 10배 이상 뚜렷하게 암세포를 구분하는 데 성공했다.

원리는 이렇다. 자성을 띤 두 나노입자 사이가 7nm(나노미터) 이상 떨어지면 자기장이 변하면서 이를 촬영한 MRI 신호가 강해진다. 연구팀은 암세포에서 나오는 단백질 효소를 인식하는 물질로 두 입자 사이를 연결해서 나노입자 조영제를 만들었다. 효소를 인식하는 물질이 효소와 반응하면서 두 입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MRI 신호가 증폭되는 원리다.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기술도 나노기술의 도움으로 더 정밀해지고 있다. 지금은 주삿바늘로 혈관을 찔러서 수십 mg의 피를 뽑아낸 뒤 그 안에 암세포와 관련된 물질이 있는지를 찾는 방법을 쓴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며칠간의 시간이 소요되며 알아낼 수 있는 암의 종류도 혈액암 등 소수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혈액 진단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나노기술을 적용한 바이오센서를 연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적용하고 있는데, 2016년 곽봉섭 한국기계연구원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 선임연구원팀은 혈액 속을 떠다니는 암세포(순환종양세포)를 나노자석으로 걸러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암이 진행되면 암세포가 혈관을 타고 다른 장기로 이동해 전이를 일으킨다. 혈액 속에서 이를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략 10억 개의 혈액세포 중에서 하나 꼴로 암세포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팀은 암세포 표면 단백질에 달라붙은 자성 나노입자를 개발했다. 나노입자가 암세포에 달라붙으면 바이오센서에 설치된 자석에 달라붙어 이를 검출할 수 있다. 특히 자성 나노입자는 전이성 암세포에 더 잘 달라붙기 때문에 바이오센서는 환자에게 암 전이가 일어나고 있는지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다. 유방암 세포를 이용해 실험한 결과 비전이성 세포는 100개 중 95개를 찾아낼 수 있었고, 전이성 세포는 100개 중에서 80개를 잡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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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기술도 나노기술의 도움으로 더 정밀해지고 있다. 출처: Pixabay

#인공 DNA 합성해서 암세포 '원샷 원킬'

진단뿐만 아니라 암을 치료하는 방법도 나노기술을 적용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방법은 우리 몸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유전자 발현 억제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우리 몸 세포는 DNA라는 유전물질에 담긴 단백질 설계도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DNA에서 시작해 단백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몇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때 실제 일꾼 역할을 하는 것이 RNA다. DNA가 건물의 전체 설계도라면 RNA는 이 정보를 가지고 단백질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RNA는 역할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이중 길이가 수 nm에 불과해 작은RNA(siRNA)라 불리는 것들은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율사' 역할을 한다. 아무리 유전자 설계도가 있다 해도 이들이 작용하면 단백질이 생산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끝없이 복제되고 전파되는 암세포를 막기 위해 siRNA를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암세포의 DNA가 단백질을 생산하는 과정을 막는 siRNA를 인위적으로 만든 뒤 몸에 넣어 암세포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siRNA를 이용하려는 이유는 '원샷 원킬' 특성 때문이다. 현재의 항암제는 암세포 단백질의 특정 부위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데, 정상 세포의 단백질에도 달라붙을 수 있어 부작용을 일으킨다. 하지만 siRNA는 목표로 하는 단 하나의 단백질만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부작용 없는 맞춤형 신약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다.

약을 목적지로 전달하는 전달체를 매번 새로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중요한 장점이다. 현재는 약마다 다른 전달체를 개발해야 해서 신약 개발비가 많이 든다. 하지만 siRNA 치료제의 경우 전달체는 그대로 쓰고 표적 단백질에 따라 siRNA의 염기서열만 바꿔주면 된다. 이런 이유로 현재 전 세계에서 40건 이상의 siRNA 표적치료제가 임상시험 중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아직까지 siRNA를 효과적으로 목적지까지 이동시키는 이상적인 전달체가 나오지 않았다. siRNA는 혈액을 타고 흐르면서 혈액 속 효소에 의해 분해되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현재까지 개발된 전달체들은 전달 효율이 떨어지거나 독성을 띠는 등의 문제가 있다. 이러한 약물 전달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치료법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나노의학 연구 또한 계속 되고 있다.

글=최영준(국가나노기술정책센터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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