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세계 최대 양자정보과학연구소 건립에 2년 6개월간 760억위안(약 13조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하자 한국 양자산업계는 허탈감에 빠졌다. 8년 동안 3000억원가량을 투자하는 양자 국책과제가 심사 중인 국내 현실과 너무 달라서다. 중국은 양자연구소 건립과 2020년까지 현존 컴퓨터보다 연산능력이 100만배 빠른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양자 기술개발 경쟁에서 뒤처져 영원히 정보통신기술(ICT) 2류 국가에 머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양자산업계를 강타했다.
◇양자 기술 없으면 4차 산업혁명 2류 국가 전락
양자정보통신기술(Quantum ICT)은 중요성에 비해 지나치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양자물리학 자체를 이해하는 사람이 적으며, 그마저도 실용 기술로 활용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양자라는 초미세 세계를 다루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양자물리학이 드디어 실용 영역에 진입했는데도 이것이 지닌 막대한 잠재력을 깨닫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 한국 ICT 산업이 처한 현실이다.
양자정보통신기술은 양자가 가진 중첩·불확정·비가역·얽힘 성질을 이용해 ICT 새로운 차원을 열려는 시도다. 다루기가 매우 어렵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도청이 불가능한 통신, 100만배 빠른 컴퓨터, 1000배 정밀한 계측이 가능해진다. 구글은 올해 안에 특정 계산에서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퀀텀 슈프리머시'를 시연한다고 공언했고, 중국은 아예 2020년을 양자컴퓨터 등장 시기로 못박았다. 다행히 양자암호통신 기술은 한국이 확보했지만 양자컴퓨터와 양자 제어·계측 기술은 정부 투자가 절실한 분야다.
양자정보통신기술에서 뒤처지면 4차 산업혁명 2류 국가로 전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 연산 능력이 뒤지면서 4차 산업혁명 핵심인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석 경쟁에서 낙오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자·화학 분석 능력이 떨어지면서 바이오·의약 산업 열세를 면치 못하고, 초정밀센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상 분석이나 신약 개발을 위해 외국에 양자컴퓨터를 빌리러 다녀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기술력 없으니 기술 개발하지 마라”
한국 양자정보통신기술 대응은 늦었다고 보기 어렵다. 2014년 말 옛 미래창조과학부는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추진전략'을 수립해 지원 토대를 체계화했다. 연구개발(R&D) 자금이 넉넉하고 기초과학이 발달한 선진국에 비해서는 늦었지만 실용기술 관점에서는 적절한 시점에 정부 지원을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기술개발 사업' 국책 과제가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 선정돼 심사했다.
마침 문재인 정부가 국정 과제에 양자암호통신 등 양자정보통신기술 산업 육성을 포함하면서 업계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학계와 산업계 내부 갈등이 커지면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탓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양자 업계는 당초 계획에서 대폭 후퇴한 변경기획안을 제출해야 했다. 금액과 연구 범위 모두 축소됐다.
'한시라도 빨리 양자 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는 산업계 주장에 대해 일부 학계에서 '양자 연구를 할 기술력이 없으니 기초 연구와 인력 양성을 먼저 한 후 투자해도 늦지 않다'고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술이 없으니 개발을 하자는 것인데 기술이 없으니 개발을 하지 말자는 이상한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양측 대립은 정부 R&D 자금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국책 과제 심사를 담당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심사위원 편향성 논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양자 업계 관계자는 “우리에게 없는 기술을 포기했다면 오늘날 한국 자동차 산업이 있었겠는가”라면서 “양자처럼 중요한 기술은 외국 전문가를 초빙해서라도 단기간에 기술을 습득하도록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의 어마어마한 투자금액을 보면 서구 열강에 뒤진 지난 100년을 보상 받으려는 집념이 느껴질 정도”라면서 “다가올 양자혁명 시대에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기술 개발에 투자할 마지막 기회”라고 역설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