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부품 기업인 무라타가 소니 배터리 사업 인수를 완료했다. 소니는 1991년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상용화한 곳으로, 무라타는 배터리 사업 육성을 천명했다.
전자부품 시장, 특히 휴대폰 부품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무라타가 배터리까지 무기로 장착해 경쟁사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2020년까지 배터리 증설에 500억엔 투자”
무라타는 지난 1일 소니 배터리 사업 인수를 마무리했다고 발표했다. 작년 7월 계약한 소니에너지디바이스 인수 작업을 1년 2개월 만에 끝낸 것이다.
무라타는 인수 완료와 함께 배터리 사업 육성 계획을 밝혔다. 2020년까지 500억엔(약 5000억원)을 투자해 글로벌 톱 수준으로 사업을 키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국 우시와 싱가포르에 위치한 배터리 생산 공장을 증설한다. 현재 15% 수준인 스마트폰 및 태블릿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을 20~30%까지 확대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연구개발 기능을 강화하고 자동차와 에너지 분야로도 진출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무라타는 “2020년까지 500억엔을 투자한 이후에도 매년 200억엔을 지속 투입할 방침”이라며 “배터리 사업 확대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자부품 1등 무라타, 배터리로 영향력 확대
무라타의 소니 배터리 사업 인수로 업계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라타는 연매출이 13조원을 넘는 글로벌 부품 업체다. 모든 전자제품에 필수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EMI필터, SAW필터, 와이파이·블루투스모듈, 쇼크센서 등에서도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전자부품 업계에서는 무라타의 기존 소니 배터리 사업 흡수가 기술은 물론 사업적으로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스마트폰 부품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다.
무라타가 MLCC서부터 배터리까지 스마트폰 제조사에 '패키지' 판매할 경우 부품을 개별 공급하는 기업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한 부품 업계 관계자는 “무라타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부품들을 원스톱으로 공급할 수 있게 돼 경쟁사보다 다양한 협상 카드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부품 시장 영향력이 높은 상황에서 또 다른 중요 부품인 배터리까지 흡수했기 때문에 지배력 확대를 꾀하기 쉽다는 얘기다. 실제로 중국 당국도 무라타의 이런 영향력 확대를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과점 문제 여부에 소니 배터리 사업 인수 승인이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측면은 미래 기술에 대한 시너지다. 소니는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배터리를 상용화했다. 무라타는 소니의 원천 기술과 특허를 사들였다.
업계는 무라타가 MLCC 기술과 소니 배터리 기술을 융합하면 슈퍼캐패시터와 같은 차세대 에너지 저장장치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슈퍼캐패시터는 전기화학적 에너지 저장 매체로서 이차전지 대체용 또는 배터리의 보조전원으로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기술적인 시너지 효과가 발휘하면 무라타는 전기자동차나 ESS와 같은 차세대 배터리 시장 진입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자동차·에너지 분야 신시장 진출을 위한 목적에서 소니 배터리 사업을 인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삼성전기·삼성SDI 위협
배터리를 흡수한 무라타는 국내 삼성전기와 삼성SDI와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업 영역이 겹치기 때문이다. 무라타의 사업 영역은 마치 삼성전기와 삼성SDI를 합친 것과 같다.
무라타는 스마트폰 부품 시장에서 이미 삼성전기와 경쟁을 하고 있고, 이번 소니 배터리 인수로 삼성SDI와도 부딪히게 됐다.
실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무관했던 무라타와 삼성SDI였지만 삼성전자가 올 들어 자사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에 무라타(소니) 배터리를 채택하면서 삼성SDI와의 경쟁이 시작됐다. 무라타와 삼성전기, 삼성SDI는 똑같이 자동차 전장을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고 있어 이들 회사의 충돌은 갈수록 더 빈번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