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4월 23일 뉴욕 링컨센터.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회장이 새 코카콜라 출시를 선언한다. 좀 더 대담하고, 과감하고, 조화로운 맛이라 했다. 첫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곧 1-800-GET-COKE로 항의 전화 4만통이 쇄도한다. 야구장 전광판 광고에는 야유가 쏟아진다. 7월 11일 출시 3개월도 채 못돼 오리지널 포뮬러로 돌아간다.
이날 ABC 방송은 인기 드라마 '제너럴 호스피털'의 방영을 잠시 끊고 피터 제닝스의 긴급 뉴스로 소식을 알린다. 심지어 한 상원의원은 이날을 '미국 역사상 의미 있는 한순간'이라고 부른다. '뉴 코크'로 불린 이것은 마케팅 역사상 가장 큰 참상이자 소비자 불만에 부닥친 사건으로 기록된 채 77일 만에 마무리된다.
당시 코카콜라의 문제는 자명했다. '펩시 챌린지'는 골칫덩이였다. 브랜드 이름을 가린 채 어떤 콜라가 더 맛있는지 묻는 블라인드 테스트에 많은 소비자가 펩시 쪽에 손을 들었다. 60%이던 시장 점유율은 1983년 24%까지 떨어졌다.
99년 된 콜라 맛을 이제 바꿔야 할 때일까. 최고 브랜드다. 그러나 판매는 감소하고 있다. 경쟁에도 밀린다. 코카콜라는 선택을 잘못한 것인가.
유사 사례가 하나 있다. 게토레이는 최고 스포츠 드링크다. 스포츠 드링크 시장을 만들었다. 문제는 코카콜라가 선보인 저가 '파워에이드'다. 시장의 10%를 뺏긴다. 뭔가가 필요했다. 새로운 맛에다 제로 칼로리 제품을 추가한다. 별반 소용없다. 2007년 판매는 바닥까지 떨어진다.
새 맛, 새 제품, 새 유통망까지 모두 소용이 없었다. 시장을 바꿀 만한 새 제품 개발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즈음 세라 로브 오헤이건이 사장으로 취임한다. 원칙부터 다시 따져보기로 한다. 운동선수에게 뭐가 필요할까. 당연히 첫째는 탈수 방지다. 이것밖에 없을까. 그다음은 뭘까. 흥미로운 점이 보인다. 대개 선수들은 경기 전에 스키틀스 같은 뭔가를 먹는다. 탄수화물덩이다. 또 경기가 끝나면 회복을 위해 단백질 음료를 마신다.
전략을 새로 짰다. 게토레이에서 시작한다. 잘 알려진 브랜드인 만큼 좋은 출발점이다. 이제 여기서 소비자가 필요한 것을 찾아서 더한다. 게토레이에서 G를 따 'G-시리즈'라고 불렀다.
경기 전에 탄수화물 음료로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경기 중에는 탈수 방지 음료, 경기 후에는 단백질 밀크셰이크다. 게토레이 앞뒤로 제품을 추가했다. 그 대신 게토레이 종류는 도로 줄였다. 멈춰 있던 매출이 다시 움직인다. 45억달러로 바닥을 친 매출은 2015년 56억달러로 올라선다. 미국 시장 점유율은 78%다. 파워에이드는 성장을 멈춘다. 2015년 시장 점유율은 19%로 주저앉는다.
데이비드 로버트슨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것을 제품 혁신의 세 번째 방식이라 말한다. 기존 제품의 성능을 높이거나 새 맛으로 종류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도 아니다. 기존 제품 중심으로 소비자 요구에 맞춘 제품을 만들고, 브랜드 가치를 재생시키는 방식이다.
세 가지를 생각해 보라 한다. 첫째 제품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 요구다. 코카콜라나 게토레이 제품만 생각했을 때 새 맛을 먼저 생각했고, 실패했다. 제품 대신 소비자 가치 사슬에 초점을 맞추라.
둘째 고객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라. 새 고객도 좋지만 기존의 주요 고객에게 새 가치를 제공하라. 준비-경기-회복에 맞춘 게토레이 시리즈는 고객 만족을 높였고, 즉시 매출로 돌아왔다. 셋째 초점을 맞추라. 경쟁사가 만드는 이 제품 저 제품을 하나로 묶어서 종합선물세트를 만들어선 안 된다. 게토레이는 '선수 능력을 극대화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뒀다. 여기에 맞춰 제품을 개발한다. 서로 주고받도록 기능을 설계했다. 이렇게 하나는 다른 것의 수요를 만들고 있었다.
수많은 혁신 방식이 있다. 시장을 한 번에 바꿀 만한 혁신은 그 어떤 것보다 매력이 있다. 그러나 곧 운명을 다할 것 같은 제품이 있다면 게토레이 선택을 한번 떠올려 보자. 해답은 이런저런 손질을 하고 모양이나 맛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 새 가치 사슬을 만드는 데 있었다. 오랜 브랜드와 제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이다. 로버트슨 교수의 '제3원리'는 기억해 둘 만하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