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자동차산업 분수령…기아차 통상임금 결정에 촉각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을 이끌어 온 자동차 산업이 거대 시험대에 올랐다. 해마다 반복되는 노조 파업과 가파르게 상승하는 인건비로 인한 생산 효율성 저하에다 '통상임금'이라는 악재가 더해지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재계는 이달 말 1심 선고를 앞둔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판결에 따라 산업계가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내 산업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의 쟁점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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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제2공장 생산라인 전경.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생태계적 위기 상황에 처했다. 국내 자동차 생산 규모는 2012~2015년 연간 450만대 수준을 유지해 오다가 지난해 423만대로 30만대 가까이 감소했다. 올해도 내수와 수출 동반 부진으로 2년 연속 생산량 감소세가 유력하다. 완성차업계 경영 악화는 협력사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부품 업계 생산·수출은 2015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3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완성차 업계는 통상임금을 비롯한 과중한 인건비 부담이 자동차 산업 생산 경쟁력 위기와 직결된다고 주장한다. 2만개 이상 부품 조립으로 대량 생산되는 자동차 산업은 인건비와 노사 관계가 생산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이미 국내 완성차업계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2%로, 제조업 경영 지표의 한계선인 10%를 넘어서며 경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 통상임금 문제가 더해지면서 자동차 산업은 침몰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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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패소 시 3조원 부담…적자 전환 불가피

기아차 통상임금 선고에 산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판부는 이달 17일로 예정된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의 1심 선고를 월말로 연기했다. 이번 소송에 산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는 만큼 법원에서도 더 시간을 갖고 신중한 판단을 내리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기아차 통상임금 문제는 2011년 2만7458명의 생산직 근로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근로자들은 연 700%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고, 각종 수당을 계산해서 2008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임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후 2014년에도 13명의 근로자가 2011년 10월부터 2014년 10월까지의 임금 소급액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은 '노동자에게 정기적, 일률적으로 소정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일급·주급·월급 또는 도급 금액'을 의미한다. 야근이나 휴일 근무를 하면 법적으로 통상임금의 50% 이상 금액을 지급하도록 규정, 통상임금은 각종 수당 액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소송 쟁점은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여부다. 근로자들이 승소하면 기아차는 그동안 밀린 3년치 통상임금과 수당, 지연 이자까지 3조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근로자들이 다른 소송을 추가로 제기한다면 실제 기아차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 부담은 훨씬 커진다.

결과는 알 수 없다. 기아차 상여금이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지만 재판부가 사측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인정, 기아차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아차가 소송에서 패소하면 판결 즉시 충당금 적립 의무가 발생, 올해 3분기부터 적자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기아차의 올해 상반기 영업익은 7870억원으로 44% 급감하면서 2010년 이래 최저 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2012년 7.5%에서 2015년 4.8%, 2016년 4.7%, 2017년 상반기에는 3% 수준까지 급락하는 등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내외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아차가 적자로 전환되면 유동성 부족 등 심각한 경영 위기에 놓이게 된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자동차 산업 생태계 특성상 완성차 업체 위기는 부품 협력 업체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기아차 1~3차 협력 부품 업체는 3000여개다. 지난해 기준 기아차 국내 매출액 31조6419억원 가운데 1차 협력사에 지금되는 부품 납품액 비중은 53%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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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항 선착장에서 선적 대기 중인 자동차들.

◇통상임금 부담 해마다 8조원 증가…양극화 심화 우려도

기아차 소송은 금액면에서 사상 최대 규모다. 앞으로 진행될 다른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과중한 인건비 부담은 자동차 업계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 채용 등 투자 여력을 약화시킬 전망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2.7%로 폭스바겐(6.3%)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제너럴모터스(GM·4.9%), 토요타(3.8%) 등 글로벌 기업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R&D 투자액도 4조원 규모로 폭스바겐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기아차가 소송에서 패소하면 근로자 간 임금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적 양극화 심화도 우려된다. 이번 판결에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신의 성실의 원칙이 부정될 경우 근로자들은 억대에 가까운 소급분을 받게 된다. 별도로 노사가 통상임금 관련 합의를 하지 않는다면 매년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받을 수 있다.

기아차는 통상임금 패소로 말미암은 비용 지급 시 3조1000억원, 근로자 1인당 1억1000만원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아차 근로자 기존 연간 평균 임금이 96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노조 승소 시 1인당 한 해 2억원이 넘는 임금을 받는 셈이다.

업계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할 경우 앞으로도 매년 1000만원 이상 지속적 연봉 인상이 이뤄지게 돼 대기업 강성 노조 대 무노조 중소기업 간 임금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중소기업 평균 연봉 3400만원의 세 배에 이르는 9600만원을 받는 기아차 근로자들이 통상임금으로 인한 소급분까지 받게 되면 근로자 간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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