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대 플라스틱(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빨리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구미에 처음으로 6세대 투자를 결정했을 당시 고객사가 없었습니다. 그때 투자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더 뒤처졌겠지요.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적기 투자, 적기 공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화법의 최고경영자(CEO)다. 거침없이 결단하고 밀어붙이는 과감한 리더십에서도 특징이 드러난다.
그런 한 부회장도 경기도 파주에 짓고 있는 P10 공장의 투자 품목과 중국 8.5세대 OLED 투자 등을 결정하기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예정보다 최종 결정이 약 한 달 늦어진 것도 고객사, 해외 정부 등 여러 관계자와 '윈-윈'할 수 있는 방법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최근 투자 발표는 회사의 미래를 건 결정이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7월 25일 이사회에서 2020년까지 대형 TV용 OLED(10.5세대급)에 5조원, 모바일용 중소형 플렉시블 OLED에 10조원, 중국 8.5세대 OLED에 5조원 등 총 20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LG디스플레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형 OLED를 양산하지만 중소형 플렉시블 OLED에서는 최대 경쟁사인 삼성디스플레이를 추격해야 하는 '후발 주자'다.
일각에서는 높은 투자비 부담, 선두 주자의 높은 기술력 때문에 LG디스플레이가 대형과 중소형 OLED에 모두 투자하는 게 무리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 부회장은 그러나 “대형과 중소형 OLED 모두 LG디스플레이가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플렉시블 OLED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자동차, 조명을 비롯해 기존에 없는 새로운 응용 거래처를 발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 부회장은 2011년 12월 LG디스플레이 수장을 맡은 뒤 중소형 플렉시블 OLED 투자를 계속 염두에 뒀다고 전했다.
당시 대형 OLED 투자와 연구개발(R&D)이 한창이었지만 중소형 플렉시블 OLED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러나 설비 투자에 수조원이 필요한 디스플레이 사업의 특성상 고객사 없이 투자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플렉시블 OLED는 고객사의 요구에 맞게 생산 라인을 최적화해야 한다. 패널을 만들어 놓고 공급하는 액정표시장치(LCD)와 전혀 다르다.
한 부회장은 “구미 E5 공장에 처음 월 7500장 규모의 6세대 설비 투자를 결정할 당시 고객사 없이 투자부터 먼저 했다”면서 “모두가 말렸지만 그때 투자하지 않았다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에 강행했다”고 회상했다.
한 부회장은 “당시 4.5세대 양산 경험을 믿고 투자를 강행했고, 그 결과 6세대 제품 고객사를 확보하는 밑바탕이 됐다”면서 “지금도 후발 주자인데 그때 투자하지 않았다면 선두 주자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는 올해 LG디스플레이가 대형 OLED에서 감가상각전영업이익(EBITDA) 기준 흑자 전환을 예상했다. OLED TV 시장의 반응이 좋아 내년 영업이익 흑자 달성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한 부회장은 “대형 OLED 패널에서 흑자를 내기까지 약 4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엔지니어들이 고생을 많이 한 만큼 10.5세대에서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