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 최면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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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겟아웃' 포스터.

'겟아웃'은 인간의 욕심과 미국 사회에 현존하는 인종 차별 문제를 고발한 공포영화다. 흑인 사진작가 크리스가 백인 여자친구 로즈의 집을 방문하면서 겪는 사건을 담았다. 크리스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로즈 부모님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로즈는 “우리 아버지는 오바마를 정말 좋아해”라며 안심시킨다.

로즈의 아버지 딘과 어머니 미시는 크리스를 가족처럼 반갑게 맞이한다. 하지만 크리스가 흡연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 미시는 금연을 도울 수 있다며 '찻잔과 은색 티스푼'을 활용해 최면을 건다. 이는 금연을 위한 최면이 아닌, 크리스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기 위한 최면이었다.

크리스는 미시가 티스푼으로 찻잔을 저을 때마다 온 몸이 마비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최면에 걸렸다는 신호다. 크리스의 건강한 육체에 늙고 병든 백인 뇌를 이식이거나 노예로 만들려는 노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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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겟아웃에서 미시가 크리스에게 최면을 걸고 있는 장면.

과연 최면으로 인간 육체와 정신까지 지배하는 게 가능할까.

미국 하버드대 부속병원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파이잘 하산 박사팀은 입원한 흡연자를 금연하게 만드는 데 최면요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금연을 희망한 67명을 여러 그룹으로 나눠 그냥 참도록 하는 방법, 금연보조제 사용, 최면요법 세 가지 방식으로 연구했다.

최면요법을 받은 그룹은 그냥 참거나 금연보조제를 사용한 그룹에 비해 금연성공률이 월등히 높았다. 최면요법을 받은 환자 50% 이상이 26주 후에도 금연을 유지했다. 금연보조제를 사용한 그룹의 금연유지율은 15%에 불과했다. 최면이 인간 육체와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속성이 있다는 증거다.

최면이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도 있다. 최근 다큐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16년째 해결되지 않은 '배산 여대생 피살 사건' 내용을 다뤘다. 유족은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과 피해 여성이 평소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점을 고려, 남자친구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피해 여성 남동생이 최면을 통해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서 용의자가 여성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누나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한 남동생은 누나가 이른 아침 집 문을 두드린 사람을 따라갔고 그게 여성이었다는 걸 잠재의식 속에 있는 기억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는 최면을 활용해 수사한다. 실제 '최면 수사'라는 분야도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 잊어버린 기억을 최면으로 되살리고 이를 증거나 단서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군산 비응도 살인사건'은 최면 수사로 범인을 잡은 대표 사례다. 술에 취해 기억을 잃은 용의자에게 최면을 걸어 그가 쓴 범행 도구를 찾아내도록 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최면은 인간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수단이라는 여러 증거가 있다. 관건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영화 겟아웃처럼 인간 탐욕을 해결하는 도구로 활용한다면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름은 들었는데 정말 본 기억은 없습니다” 같은 거짓말을 늘어 놓는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세상이 좀 더 밝아질 수 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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