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과학향기]영화 속 상상을 실현하는 나노로봇기술

영화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2009)'에서는 가공할 무기 '나노마이트'가 등장한다. 금속이라면 뭐든지 먹어치울 수 있어 극 중에서는 파리 에펠탑을 부수기도 한다. 육중한 탱크조차도 순식간에 기화시켜 버리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보여주지만 나노마이트의 본모습은 암을 치료하기 위한 치유로봇이었다. 나노마이트와 같은 나노로봇이 실제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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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아이조'에서는 나노로봇을 병기로 활용한 '나노마이트'가 가공할 위력을 뽐낸다. (출처: Paramount Pictures)

■ 암 치료 위해 개발되는 나노로봇

영화 속 나노마이트는 체내에 주입된 독극물을 채집해 몸 밖으로 배출하거나 순식간에 얼굴을 성형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심지어는 뇌에 작용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영화인 만큼 그 위력이 과장돼 있지만 나노로봇은 오늘날 각광 받는 연구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10억 분의 1'을 의미하는 '나노'라는 접두사가 붙을 만큼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모터나 배터리를 이용하는 기계식 로봇을 이용하는 연구는 드물다. 대신 그 자체로 크기가 작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이용해 로봇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박종오 전남대 기계공학부 교수팀은 박테리아를 이용한 의료용 나노로봇, 일명 '박테리오봇'을 개발해 2013년 12월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사이언티픽 리포트는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다. 박 교수팀이 개발한 박테리오봇은 약물을 담을 수 있는 3마이크로미터(μm, 1μm=100만분의 1m) 크기의 캡슐형 구조체와 결합된 박테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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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오 전남대 기계공학부 교수팀이 개발한 박테리오봇. (출처: 전남대학교)

연구팀은 쥐에서 장티푸스 유사 증상을 일으키는 박테리아(S. typhimurium)의 유전자를 조작해 체내 독성을 100만분의 1 이하로 낮추고, 암세포가 분비하는 특정 물질을 표적 삼아 이동하도록 만들었다. 영화에서 나노마이트를 개발한 본래 동기처럼 말이다.

유전자 조작 박테리아는 그 자체만으로도 암세포를 공격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캡슐형 구조체에 항암제를 넣으면 프로펠러처럼 움직이는 편모를 이용해 체내에서 평균 초속 5마이크로미터로 암세포까지 직접 이동해 항암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실제로 연구팀은 대장암, 유방암 등을 앓도록 조작한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박테리오봇이 암세포를 정확하게 찾아가는 것을 최종 확인했다. 박테리오봇이 암세포를 찾아가는 성질을 이용하면 치료뿐만 아니라 조기 암 진단에도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박종오 교수는 “혈액을 통해 암세포에 전달되길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기존 항암치료방법과 달리 능동적으로 암세포에만 항암제를 전달할 수 있다”며, “암세포를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2012년 이상윤 부경대 공간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가 개발한 마이크로 로봇은 혈류 속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다. 지름 1밀리미터(mm) 이하의 로봇으로 혈관 속을 다니며 병변을 관찰하거나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는 혈전을 제거할 수 있다. 독극물을 채취하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 나노마이트가 하던 일과 유사한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교수가 만든 마이크로 로봇은 유체가압 추진방식으로 혈류를 거슬러 움직일 수도 있다. 이전까지 개발된 로봇은 혈류를 따라서만 이동이 가능했다.

스위스 로잔공대 연구팀은 지난해 박테리아의 형태를 모사한 마이크로 로봇을 공개했다. 이전까지 만들어진 단단한 마이크로 로봇과 달리 부드러운 소재를 이용하고 모터를 없앴다. 대신 자성을 띤 나노입자들을 이용해 박테리아가 섬모를 움직이듯 전자기장을 받으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연구를 주도한 셀만 세이커 박사는 “인체 내에서 박테리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 마이크로 로봇에게 체내에 필요한 약품을 전달하도록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 T-1000을 현실화하는 나노기술

영화 '터미테이터2 : 심판의 날(1991)'에는 나노로봇으로 만들어진 살인병기 'T-1000'이 등장한다. 배우 이병헌이 출연해 화제가 됐던 영화 '터미네이터 : 제니시스(2015)'에서도 이병헌이 맡았던 역할이 T-1000이다. T-1000의 특징은 액체금속으로 이뤄져 있으며 나노로봇에 의해 그 형태와 움직임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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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미네이터 : 제니시스'에서 배우 이병헌은 나노금속으로 이뤄진 살인병기 'T1000'으로 분했다. (출처: Paramount Pictures)

카로시 칼란타르자데 호주 로열 멜버른 공과대(RMIT) 교수팀은 영화 속 T-1000처럼 액체금속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기술을 2016년 8월에 선보였다. 외부에서 자기장을 걸거나 전류를 흘리는 방법을 이용하지 않고 산과 염기의 밀도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액체금속을 움직이는 기술이다. 칼란타르자데 교수는 “기초적인 성과이지만 향후 응용을 통해 T-1000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액체금속 기반 인조인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영화 속 T-1000은 어느 순간에는 단단하게 변해 양팔을 칼날처럼 휘두르다가도, 다른 때는 액체처럼 부드럽게 변해 쇠창살을 통과하기도 한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은 자유자재로 단단함과 부드러움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신개념 '메타물질'을 개발했다고 지난 1월 발표했다. 메타물질이란 자연계에서 보기 힘든 성질을 갖도록 인간이 만든 물질을 가리킨다. 연구팀이 개발한 물질의 경도는 말랑말랑한 고무에서 단단한 금속 수준으로까지 변할 수 있다. 연구를 주도한 샤오밍 마오 물리학과 교수는 “의사의 손에 들어오기 전에는 말랑말랑하다가도 환자의 입안에서 자리를 잡은 뒤엔 단단해지는 치과 보형물은 물론 자동차 소재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며 “사고 전까지는 단단하다가도 사고가 나면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물렁물렁해지는 자동차 소재로도 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액체금속을 움직이는 기술, 말랑말랑한 상태와 단단한 상태를 자유롭게 오가는 물질이 나노로봇 기술과 함께 구현된다면, 영화 속 T-1000이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글 : 이우상 과학칼럼니스트(국가나노기술정책센터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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