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거인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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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돌고 돈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 왕 부차는 월나라와의 전쟁으로 전사한 아버지 합려의 복수를 꾀했다. 가시 장작에서 잠을 자며 칼날을 갈았고, 결국 월나라 왕 구천을 굴복시켰다. 오나라의 오자서는 “구천을 죽여 후환을 없애자”고 권하지만 부차는 충고를 무시한다. 20년 후 구천은 오나라를 정복하고, 부차는 자살한다.

산업계도 비슷하다. 과거 한국 기업은 기술력이 없어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전자제품 단순 조립만을 담당했다. 그 당시 주요 고객사는 일본의 굴지 기업이었다. 한국 기업은 이들과의 거래에서 힘을 길렀다. 결국 과거 '고객사'를 잡아먹었다. 반도체 산업이 대표 사례다. 한국은 후발 주자라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규모 선제 투자를 단행했다. 현재 반도체 호황의 결실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도시바가 반도체사업부를 매각키로 한 것은 거인의 몰락을 보는 듯하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 원조로 꼽힌다. 그만큼 반도체 시장에서도 원천 기술력을 갖춘 전통의 강호였다. 그렇던 도시바 반도체가 먹잇감이 됐다. 일본으로서는 얼마 전 일본 대표 기업의 하나인 샤프가 대만 훙하이그룹에 매각됐을 때의 충격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현재'가 '한국의 내일'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내세워 반도체 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이 단기간에 기술 격차를 좁히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 기업이 잠재된 후환인 건 사실이다.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도시바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세계 2위다. 도시바 인수전에 뛰어든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5위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 부문을 인수하면 순식간에 세계 점유율 2위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업계의 세계 시장 지배력을 굳힐 수 있다.

'자이언트 킬링'이라는 말이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약팀이 강팀(자이언트)을 이기는 이변을 뜻한다. 그 이변이 한국 반도체 산업을 비켜 가리란 보장은 없다. 5위 하이닉스가 2위 도시바를 인수하는 이변이 일어날지 자못 기대된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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