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학계, 연구계를 과학기술의 3대 주체라고 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지속 성장하려면 이들 3대 주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각자에게 맡겨진 미션을 잘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선진국의 바로미터다.
우리나라는 박사급 연구자를 기준으로 산업계에 18만명, 학계 4만명, 그리고 연구계에 1만5000명이 있다. R&D 연구비로 비교하면 국가 총 R&D 예산 65조원 가운데 산업계에 51조원이 몰려 있다. 학계는 6조5000억원, 연구계는 5조원 정도를 사용한다.
산업계는 전체 과학기술 인력의 76% 이상을 보유하고 예산도 전체의 78% 이상을 사용한다. 학계는 17% 인력이 10% 예산을 사용한다. 다만 학계에서 수행하는 연구 대부분은 기초연구다. 이를 감안하면 적절한 분포다.
반면에 연구계 인력은 6%, 사용 예산은 7%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 사업, 위성 개발사업 등 대형 체계 개발 사업과 한국형 핵융합로 건설, 마젤란 망원경 건설 등 거대 장치사업을 포함한 수행 연구 과제를 감안하면 결코 크지 않은 규모다.
독일항공우주연구소(DLR)가 사용하는 1년 예산이 4조가 넘는다. 그런데 한국은 25개 정부출연연구원 전체가 사용하는 예산이 이 정도 규모다. 눈여겨 볼 일이다.
한국 과학기술 3대 주체가 수행하는 미션을 살펴보자. 우선 학계는 기초연구와 인력양성이 목적이고 연구계는 원천기술을 개발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역할을 한다. 산업계는 사업화로 경제성장을 주도한다.
하지만 지난 50년 동안에는 연구계와 산업계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기술을 견인하고 산업 성장을 이끄는 역할의 상당부분을 연구계가 담당했다. 경제성장 달성이라는 미션이 국가출연연구소 탄생 목적이었다. 또 산업체 기술 경쟁력이 떨어졌던 과거에는 연구계, 특히 출연연에 주어진 국가적 미션이었다.
그러다보니 과학기술 3대 주체에는 항상 사업화 성과가 요구됐다. 많은 R&D 비용을 사용하면서 성과는 없다는 비난도 많았다.
이제는 과학기술 3대 주체가 해야 하는 역할에 따라 임무와 책임을 재조정해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연구계나 산업계와 경쟁해서는 안 된다. 본연의 인재양성과 기초연구에 매진해 기초 학문의 전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폴리페서 대신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다. 산업계는 국가 경제 성장을 이끄는 주체다. 추격형 연구를 하든, 유행을 ?든, 신기술을 개발하든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연구계, 특히 출연연은 미션을 재정립해야 한다. 연구자가 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뛰어다닐 것이 아니라 퍼스트 무버로 나설 수 있는 선도 기술을 찾아 깊이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기후변화, 지진, 미세먼지, 감염병 등 국가가 직면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도 맡아야 한다.
양수석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장 ssyang@ka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