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업체 세메스가 초미세 반도체 제조 공정에 특화된 신개념 세정건조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TEL) 등 글로벌 장비 업체가 아직 시제품조차 내놓지 못한 혁신 장비다.
경쟁사인 삼성 계열사라는 관계 때문에 세메스 장비를 단 한 번도 구매하지 않던 SK하이닉스도 구매 상담을 요청했을 정도다. 한국 반도체장비 산업이 `빠른 추격자`에서 `혁신 선도자`로 체질을 바꾸는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세메스는 최근 이산화탄소 슈퍼 크리스털 세정 건조 장비를 삼성전자에 공급했다. 삼성전자는 10나노급 D램 생산에 이 장비를 활용하고 있다. D램에서 가장 중요한 커패시터(전하를 저장하는 요소물) 공정에서 세정을 마치고 나온 웨이퍼를 건조할 때 이 장비가 쓰인다.
세메스는 이 장비를 초임계(超臨界)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액체와 기체를 분간할 수 없는 온도와 증기압 상태를 임계점이라고 한다. 임계점을 넘어서면 기체도 액체도 아닌 특수한 성질을 띠는 초임계 물질로 변모한다.
세메스 장비는 강한 압력과 높은 온도로 액화 이산화탄소 물질을 초임계 상태로 만든다. 기존에는 웨이퍼를 회전시키면서 세정 약액을 건조시켰다. 그러나 10나노대에선 패턴 간격이 좀 더 좁아지고 단차 역시 커졌다. 기존의 회전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면 패턴이 휘거나 인접 패턴과 붙는 문제가 발생했다. 세메스 장비는 웨이퍼를 회전시키지 않고 고압으로 생성된 초임계 물질로 약액을 건조하고 찌꺼기까지 걸러내기 때문에 수율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
초임계는 커피 원두에서 카페인을 제거할 때, 참깨에서 참기름을 추출할 때 등 우리 주변에서도 주로 활용되는 기술이다. 삼성전자와 세메스는 초임계 물질의 밀도가 액체와 동일해서 잔류물과 오염물을 쉽게 용해하면서도 미세 패턴의 내부 공간까지 완벽하게 도달, 이를 제거하는 기체의 성질도 동시에 띤다는 점에 착안해 과거 수년 동안 비밀리에 이 장비를 개발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업계 최고 D램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차세대 장비가 갖춰야 할 기반 기술 정보가 많다”면서 “세메스 역시 삼성전자의 요구 사항을 잘 받아들여서 글로벌 장비 업체보다 빠르게 상용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메스가 이 장비를 상용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SK하이닉스도 구매 상담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AMAT와 TEL 등도 초임계 세정 건조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데모 장비도 공급하지 못한 상태여서 상용화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세메스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 연속 매출액 1조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전방 산업계의 투자 확대로 매출이 30% 이상 신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메스와 함께 매출액 1조원을 노리는 장비 업체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물류 시스템 전문인 에스에프에이는 지난해 장비 분야에서 매출 8500억원을 기록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패널 장비 업체 AP시스템도 수년 내 1조원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내부 목표를 세웠다.
반도체 장비 전문가는 “1980년대 후반기에 본격 태동한 한국 반도체장비 산업은 지난 30년 동안 국산화와 이를 통한 외산 장비 가격 낮추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전방 산업 성숙과 협업 강화로 경쟁력이 높아졌다”면서 “세메스를 필두로 글로벌 최초의 혁신 장비를 내놓는 횟수가 잦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