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시장의 급변이 예고됐다. 신기술로 인식된 소프트웨어정의데이터센터(SDDC)가 실제로 등장했다.
하드웨어(HW) 중심의 데이터센터가 소프트웨어(SW) 중심 데이터센터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SDDC 서막이 올랐다.
◇SDDC 수요 가시화
SDDC 기술은 5년 전부터 거론됐다. VM웨어 등 SW 기업이 서버 가상화라는 개념을 도입했고, 네트워크 장비·솔루션 업체가 잇달아 기술과 제품을 선보였다. 국내에선 서버, 스토리지, 스위치 등 HW 중심 데이터센터가 주를 이뤄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SDDC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달라졌다. 늘어나는 트래픽의 효율 관리를 하려는 기업과 기관 요구가 SDDC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첫 삽은 인천 유시티가 떴다. 청라·송도·영종 데이터센터를 하나로 묶어 SDDC 기반의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구축했다. 기존 데이터센터 대비 약 100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인천 유시티 기술본부 관계자는 12일 “x86 서버와 기존에 활용하던 스토리지 등 저장장치를 재활용, 예산을 아낄 수 있었다”면서 “SW로 기존 데이터센터를 가상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제주람정개발이 짓는 제주 신화월드와 제3정부통합전산센터에 SDDC가 구축된다. 제주 신화월드에는 LG CNS와 SK텔레콤이 참여했다. 23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제3정부통합센터는 현재 SDDC 구조가 설계되고 있다. 국토연구원 등 일부 공공기관에서도 SDDC를 구축하고 있다.
신규 SDDC 사업도 잇달아 발주될 전망이다. SDDC 관련 SW 기업 대표는 “기존에는 SDDC를 설명해야 할 정도로 시장 이해가 부족했다”면서 “지난해부터 SDDC 도입을 위해 구축 방법 문의 사례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그는 “일부 기업은 이미 예산을 편성해 SDDC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SDDC 시장이 최대 3배 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대두된다.
◇비용절감, 네트워크 운영 효율성, 확장성이 인기 비결
SDDC는 우선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데이터센터 시장이 SDDC로 전환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HW 중심 데이터센터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건 베어메탈, 화이트박스 장비 등 SW가 없는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HW 데이터센터에는 장비마다 기능을 구현하는 SW가 따로 있었다. 장비 제조사마다 SW 특성이 달라 제조사 의존도가 높다. 특정 제조사가 개발한 서버에는 특정 서버에만 맞는 SW가 내장됐다. 데이터센터 운영에 서버 제조사가 구현한 기능만 사용하고 정보기술(IT) 정책도 그대로 따라야 했다.
반면에 SDDC는 주로 범용 x86 서버를 사용한다. 가격이 저렴하다. 서버뿐만 아니라 스토리지 등 저장장치나 스위치 같은 네트워크 장비까지 SW가 없는 제품을 쓸 수 있다. 일종의 `깡통` 장비다. SW는 원하는 데이터센터 방향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오픈소스 기반으로 된 SW는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데이터센터 운영자 의지에 맞는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도 SDDC의 강점이다. SDDC는 서버, 스토리지, 스위치 등 HW가 가상화 기술로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된다. 그 안에 어떤 네트워크 구조를 세우고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은 운영자 몫이다. 같은 장비로 인천 유시티는 스마트시티, 제주신화월드는 관광·리조트에 각각 적합한 서비스를 구현한다. 특정 기능 구현에 제한이 없는 만큼 서비스 설계와 SW 개발이 SDDC의 핵심이다.
확장도 용이하다.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장비를 특정 크기에 맞춘 랙에 탑재하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트래픽 처리 용량이 늘어나면 데이터센터 장비를 추가로 구매, 랙에 장착하면 된다. 모든 장비가 SW로 가상화됐기 때문에 추가 설정이 필요 없다. 인천 유시티는 19인치 랙을 선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페이스북 등이 제안한 `오픈컴퓨트프로젝트(OCP)`에 따라 21인치 랙을 주로 활용한다.
◇2020년까지 89조원 시장, 유관 산업에도 파장
시장조사 업체 마케츠앤드마케츠는 2020년 세계 SDDC 시장 규모가 771억8000만달러(약 89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2015년 기준 217억8000만달러(25조원)에서 254% 증가한 규모다.
국내에선 도입 단계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SDDC가 활용되고 있다. 오픈소스 클라우드 기술인 `오픈스택`을 활용한 SDDC 구축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컴캐스트는 시장 수요에 따라 콘텐츠 서비스를 즉각 제공하기 위해 SDDC를 구축했다. 미국 슈퍼볼 같은 행사 때는 방송 콘텐츠를 시청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통신 트래픽이 폭증한다. SW로 트래픽 처리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등 SDDC 기술로 트래픽 이슈를 처리할 수 있다.
월마트는 고객이 늘거나 데이터가 급증할 때를 대비, 유연한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을 도입했다. 서버 중앙처리장치(CPU)만 15만개에 이른다. 27개국 1만1000개 매장에서 2억4500만명의 고객 데이터 분석도 가능하다. AT&T도 2012년부터 SDDC 도입을 시작, 2014년 3개 데이터센터를 추가 확장했다. 2020년까지 SDDC 기술로 네트워크 인프라의 75%를 가상화할 계획이다. 야후도 수만대 서버를 자동 설치할 수 있는 SDDC 환경을 갖췄다.
SDDC 확산으로 글로벌 컴퓨팅 장비와 SW 시장 판도도 바뀔 전망이다. 현재 SDDC 시장은 뉴타닉스, 델, 시스코, VM웨어, 노키아 등 기존 통신·네트워크 장비 회사가 진입한 상태다. 그러나 범용 x86 서버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사용하는 SDDC 특성상 장비 분야의 진입 장벽은 낮다. 앞으로 SDDC를 둘러싼 장비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SW도 장비 속에서 기능을 구현하는 방식 대신 가상화 기술을 통한 외부에서 장비를 제어하는 형태로 변모할 가능성이 짙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