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혜택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지금이 회사채 발행 적기다”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중 1, 2위 현금 보유액 기업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잇달아 채권을 발행해 주목을 받았다. 두 회사가 발행한 채권은 약 270억달러(약 30조원) 정도다. 이 돈은 단기 차입금 상환과 자사주 매입, 기타 기업 운영에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한다.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이들이 30조원에 달하는 거금을 새로 마련한 것은 보유 현금 90% 이상이 해외에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얻은 이익을 본국으로 송환할 때 적용하는 세율을 현행 35%에서 10%로 낮출 예정이다. 하지만 이것이 언제 시행될지는 몰라 미국 IT기업들이 잇달아 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해외에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정보술(IT)기업이 언제 시행될지 모르는 세제 혜택을 기다리지 않고 잇달아 회사채를 발행, 단기 채무를 갚고 자사주 매입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IT기업 중 현금 보유액 1, 2위다. 세계 최고 가치 기업 애플은 지난해 말 기준 2200억달러 이상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세금 등 여러 이유로 보유 현금 90% 이상을 해외에 두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다. 애플에 이어 미국 IT기업 중 두 번째로 많은 현금을 보유(약 1200억달러)하고 있는데, 역시 90% 이상을 해외에 묻어두고 있다.
막대한 현금이 있지만 두 회사는 지난주 합쳐 270억달러(약 30조원) 상당 채권(회사채)을 발행, 거액을 마련했다. 단기 채무를 갚고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과 자사주를 매입하기 위해서다.
애플은 2일(현지시간) 100억달러(약 11조5000억원) 채권을 발행했다. 당초 60억~80억달러를 발행할 계획이었지만 주문량이 넘쳐 규모가 커졌다. 애플은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자사주 매입과 배당, 일반 기업활동에 사용한다. 애플은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490억달러 정도를 돌려줄 계획이다. 지난 분기에도 애플은 주주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150억달러를 투입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이날 채권 시장에서 170억달러(약 18조5000억원)를 조달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 조성한 자금을 단기 채무 상환 등에 사용한다. 2016년 말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단기 부채는 251억달러다. 올해 9월까지 갚아야 할 돈이다. 링크드인을 262억달러에 매입하면서 단기 부채가 커졌다. 당국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현재 갖고 있는 현금은 65억달러밖에 안 된다.
미국 기업이 발행하는 연간 채권액은 1500억달러 정도다. 지난해 미국 기업의 투자성 부채보다 10% 이상 많은 금액이다. 무디스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 묻어 놓은 현금은 총 1조 7700억달러에 달한다. 주로 IT기업과 의약 분야 기업 돈이 많다. IT기업 중에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 모기업), 시스코, 오라클이 현금 보유액 1~5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해외 현금 보유액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오라클, 알파벳 순이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외에 다른 IT기업은 아직 채권 발행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세제 개편이 이뤄지면 이들 IT기업의 해외 보유 현금이 미국으로 많이 들어오는 대신 채권 발행액은 감소할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공언과 달리 세제 개편안이 언제 실현될지 미지수다. 채무조사기업 크레딧사이츠 애널리스트 조단 챌핀은 “세제 개편이 되기 전 가장 좋은 현금 마련은 채권 발행”이라고 밝혔다. 리서치 회사 크레딧 채권 애널리스트 데이브 노브셀은 “현재 기업들이 채무 시장에 눈길을 돌릴 이유가 없다.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채권을 발행하기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진단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세제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트럼프 세제 개편안이 단기간에 이뤄질 것 같지 않다”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았다. 한 상원 의회 보좌관은 로이터에 “2018년 봄이나 돼야 세제 개혁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