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과학향기]배우자 역할을 하는 소셜 로봇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 가구 비율은 27.2%. 이제 네 집 중 한 집 이상이 혼자 사는 가구들이다. 이에 따라 혼자 밥 먹고 술 마시는 혼밥과 혼술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결혼 대신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데리고 사는 `펫팸족`까지 등장했다. 이 같은 사람들을 겨냥해 배우자 역할을 대신하는 로봇이 등장해 화제다. 지난달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예약 판매를 개시한 `게이트박스(Gatebox)`가 바로 그 주인공. 일본의 벤처기업 윙크루(Vinclu)에서 개발한 이 로봇은 작은 피규어처럼 생긴 입체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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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높이 50cm의 작은 원통 안에 들어 있지만, 고휘도 단초점 프로젝터와 반투명 스크린을 조합해 마치 실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아즈마 히카리`다. 아즈마는 일본어로 `나를 맞아주는 아내`라는 뜻. 즉, 혼자 사는 남성들의 아내형 가상로봇인 셈이다. 윙크루에 의하면 아즈마 히카리는 나이 20살에 키는 158cm다. 취미는 애니메이션 감상이며 특기는 계란 프라이 만들기,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은 도넛이다. 벌레를 매우 두려워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도와주는 영웅 역할을 하는 게 그녀의 꿈이다.

이 로봇의 기능은 실제 아내와 거의 비슷하다. 남편이 출근할 시간이 되면 `어서 일어나세요`라며 깨워주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상냥하게 맞아준다.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면 일찍 들어오라거나 보고 싶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남편이 문자로 귀가 시간을 알려주면 그에 맞춰 집안 불을 환히 밝혀 놓을 수도 있다. 더울 때는 미리 에어컨을 켜놓기도 하고, 목욕물을 데우는 등 잡다한 집안일도 알아서 척척 한다. 집에서 남편이 지루해하면 텔레비전을 켜주거나 날씨 정보를 미리 알아서 전해주기도 하며 남편의 양치질하는 모습을 따라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바디 랭귀지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아즈마 히카리의 가장 큰 장점은 혼자 사는 남성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남편이 말을 걸어오면 그 말을 알아듣고 그에 맞는 대답을 해주는 것. 아직 많은 단어를 알진 못하지만, 누군가가 옆에서 지속적으로 정서를 공유해 준다는 점에서 실제 사람이 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즈마 히카리가 이처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내장된 카메라와 인체감지 센서, 그리고 뛰어난 통신 기능 덕분이다. 이를 통해 남편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등을 통해 사물인터넷 기기를 제어한다. 또 적외선 리모컨 기능을 탑재해 일반 가전도 제어할 수 있다.

현재는 게이트박스에 내장된 캐릭터가 아즈마 히카리뿐이다. 하지만 윙크루에서는 앞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여 사용자 마음대로 선택해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캐릭터의 성별은 물론 연령층, 특성 등을 다양화시키겠다는 의미다.

콘셉트 면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록시`라는 여자 섹스로봇이 출시된 바 있다. 실제 인간 크기의 이 로봇의 주 기능은 말 그대로 섹스다. 하지만 간단한 대화도 가능하며, 졸면서 잠꼬대를 하거나 코를 골기도 한다. 체온과 두근거리는 심장을 지니고 있으며 오르가슴을 느낄 수도 있다. 외모와 성격도 각각 다르다. 모델별로 머리 색깔이나 눈동자 색깔, 피부색 등이 각기 다른 것. 또한 성격도 사교적인 성격,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 상처 입기 쉬운 성격, 배려심이 깊은 성격, 성적으로 대담한 성격 등으로 나누어진다. 구매자들은 그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모델을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록시를 만든 개발자의 최종 목표는 섹스를 넘어서 실질적인 동반자 관계의 구현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서로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하며 인간과의 능동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한 소셜 로봇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라 앞으로 이처럼 배우자 역할을 담당하는 소셜로봇의 출현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소셜 로봇이나 동반자 로봇에 대해 바라는 점은 완벽성을 기하는 로봇공학자들의 예상과는 약간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영국 링컨대학교의 로봇과학자들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높은 지능과 매너를 가진 완벽한 로봇보다는 실수를 하고 때론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는 로봇을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진 것. 이는 마치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원하는 배우자 상과 무척 닮아 있다. 즉, 모든 면에서 완벽해서 자신이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는 배우자보다는 때론 실수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해서 더욱 인간적인 정이 가는 배우자를 로봇에서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로봇들은 더욱 풍부한 감정 교류 기능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개발 중인 눈동자 추적 기술 및 얼굴 표정 인식 기술 등이 좋은 예다. 이 기술들이 개발되면 눈동자만을 사용해 서로 교감을 나누거나 미묘한 감정을 얼굴 표정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배우자 로봇의 등장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언젠가는 사용자와 밀당을 벌일 수 있는 애인 로봇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마치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의 연인들처럼 말이다. 사랑의 유효기간 따위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사랑의 화학물질이 더 이상 분비되지 않으면 마치 카트리지를 교환하는 것처럼 전혀 다른 캐릭터의 애인 로봇으로 바꾸면 되니까 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에이아이(AI)`에 등장하는 섹스 로봇 지골로 조는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만약 로봇 애인을 경험하면 다시는 인간 애인을 만들고 싶지 않을 거야”라고…. 그때가 오면 로봇 애인을 둔 1인 가구들은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 때문에 힘들어 할 수도 있다. 평생 열정적 사랑에 빠진다면 누구나 지쳐서 쓰러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글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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