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이주희의 감독 코드] ‘당신 거기있어줄래요’-‘키친’-‘가족시네마’, 따뜻한 시선의 홍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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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각색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데뷔했다. ‘앤티크’에서 남자 파티쉐가 등장했다면, ‘키친’에서는 한식을 사랑하는 두 남자가 나오는데, 그 중 한 명이 ‘앤티크’의 주인공 주지훈이다. 2009년 ‘키친’의 연출과 각본을 맡아 감독으로 데뷔했고, 아름다운 영상미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옴니버스 영화 ‘무서운 이야기’ ‘가족시네마-별 모양의 얼룩’에 참여했다. ‘결혼전야’로는 호평과 혹평을 함께 들었다. 최신작인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기욤 뮈소의 원작 소설을 전 세계 최초로 영화화하는데 성공했는데, 미국 배경의 원작 소설을 1980년대 한국 배경으로 잘 풀어냈다. ‘키친’ ‘결혼전야’ ‘가족시네마’ 등에서 봤을 때, 서사보다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더 일가견이 있다. 다만 소설 원작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는 따뜻한 감수성뿐만 아니라 탄탄한 서사까지 조화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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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 ‘키친’

-줄거리
증권맨인 남편 상인(김태우 분)은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을 운영하기로 한다. 아내 모래(신민아 분)는 남편이 상의 없이 일을 그만둬도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종적인 여자다. 하지만 어느 날, 모래는 미술관에서 만난 남자 두레(주지훈 분)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데, 죄책감을 느낀 그는 모든 것을 남편에게 털어놓는다. 남편은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잊자’고 한다. 그리고 데려온 요리 멘토가 바로 두레다. 한 ‘키친’을 두 남자와 한 여자가 공유하기 시작하고, 셋이 함께 살면서 두레는 행복하다. 상인은 그런 두레의 마음을 눈치 채게 되고, 미술관 남자가 두레인 것도 알게 된다. 두레는 모래에게 평생 보살핌을 받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두레는 두 남자를 떠난다. 이후 상인은 그동안 찾지 못했던 요리의 부족함을 채우게 되고, 모래에게 다시 프러포즈 한다. 그리고 모래는 과거와 달리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사람이 됐다.

-주목할 점
1. 요리하는 남자
지금에야 많지만, 이 영화가 개봉했던 2009년에는 요리하는 남자들을 콘텐츠로 볼 수 없던 시기다. 홍지영 감독은 요리하는 남자에 주목했다. 홍지영 감독은 언젠가 요리 3부작을 완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데, 그 시작은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앤티크’를 각색한 것이다. 1년 후 첫 연출작인 ‘키친’으로 첫 번째 요리 영화를 완성했했다. 앞으로 홍지영 감독의 요리 영화를 또 한 번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 인생 캐릭터 & 아기자기한 배경 ‘눈 호강 영화’
이 작품은 신민아, 주지훈, 김태우의 ‘인생작’이라 불린다. 까맣고 큰 눈을 가진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신민아와 ‘햇빛이 나른하고 좁고 이상한 맛이 났던’(모래의 말에 따르면) 사내 주지훈의 첫 만남 신은 그 장면만 따로 떼어 포스터화시키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이외에도 아름다운 한옥집에 사는 주인공들,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한 양산 편집숍을 운영하는 모래, 정갈하고 예쁜 음식을 만드는 상인-두레 덕분에 관객들은 눈 호강을 제대로 할 수 있다.

3. 한 여자의 성장기
모래는 직접 만든 양산을 판다. 장사가 엄청 잘 되는 것도 아닌데, 이 여자는 양산만을 고집한다. 평소 햇빛에 예민한 피부를 가진 모래에게 양산은 그를 보호해줄 수 있는 굉장히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남편 역시 그녀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상인과 모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랐고, 모래에게 상인이 세상의 전부다. 상인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아내에게 ‘허락’을 받는 것보다 일을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남편인데, 동반자라기보다는 아내를 돌봐주는데 더 익숙하다. 두레는 모래에게 “평생 돌봐주는 것, 그거 사랑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모래는 “그래서 다행이다. 그게 상인이라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래는 두레를 만난 이후 여자로서 자신의 매력을 알게 된다. 이후 미술관에서 만난 남자가 두레였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완전히 들키자 생각보다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양산가게의 셔터를 내린다. 그리고 앞서 상인의 자리였던 식탁 가운데 자리를 모래가 앉으면서 두 남자에게 밥을 먹인다. 세상의 중심이 상인 위주로 흘렀던 모래의 세상에서 드디어 주인공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모래는 두 남자 모두와 헤어진다. 이혼을 하고 1년 뒤, 상인은 모래에게 다시 프러포즈를 하는데, 모래는 “생각해 본다”고 말하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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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 ‘가족시네마-별 모양의 얼룩’

-줄거리
어떤 사람은 어린 아들과, 어떤 이는 이혼한 남편과 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이 사람들의 손에는 치킨, 또는 로봇 장난감이 들려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서로 친한 듯 밝은 척 자신의 일상을 털어놓지만, 목적지인 합동묘지에 간 순간 모두 오열을 한다. 우연히 들른 한 주정뱅이 슈퍼 아저씨는 1년 전 수련원에서 일어났던 화재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날 화재가 일어났을 때쯤 별모양 브로치를 한 아이가 가게 앞을 지나갔다고 한다. 부모들은 서로 자기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죽은 아이들 중에 누구 하나라도 그렇게라도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 엄마(김지영 분)는 1년 전 딸 옷에 묻은 얼룩을 제대로 빨지 못해 별 모양의 얼룩을 남긴 채 수련원에 보냈던 일을 기억하고, 아이가 있을 곳으로 찾아 나선다.

-주목할 점
1. 배우 최무성의 마른 모습, 단역으로 출연한 황석정
2012년만 해도 단역으로 출연했던 최무성과 황석정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최무성은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다르게 홀쭉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따뜻하지만 무뚝뚝한 아버지 역할이 잘 어울린다. 황석정은 슈퍼를 운영하는 주정뱅이 남편에게 면박을 주는 아내로 출연해 영화에서 유일하게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2.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원작의 영화
1999년 청소년 수련시설 씨랜드에서 화재가 발생해 잠자고 있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이 숨졌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성란 작가가 2001년 책으로 펴냈는데, 메마른 문체의 하성란 작가의 글처럼 홍지영 감독도 이것저것 설명하기보다 죽은 아이를 둔 부모의 모습을 덤덤하게 그려내 관객들을 슬픔으로 인도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반복되고 있다. 슬픔을 계속 안고 살아가는 부모들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많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3.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
극중 사건이 발생한 수련원에서 3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의 한 슈퍼 아저씨가 사건이 일어날 쯤 한 아이를 봤다고 주장한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식만큼은 살아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유치원생인 어린아이가 3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을 밤늦게 혼자 왔을 리도 만무하고, 사고 당일을 기억하는 유치원 교사도 그날 아이들은 모두 수련원에 있다고 이야기 한다.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기억에 희망을 거는 부모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서글프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