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View | 방송] ‘도깨비’·‘푸른 바다의 전설’이 기억을 다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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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드라마에서 ‘기억’은 어떤 소재일까. 주인공은 기억을 잃어 가슴 아픈 사연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막장 같은 내용을 이끌기도 한다. 자칫하면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잘만 활용한다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높이며 드라마의 흥미를 극대화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SBS ‘푸른 바다의 전설’과 케이블방송 tvN ‘도깨비’은 기억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 사고나 병으로 기억을 잃는 단순한 과정에서 벗어나며 과거 드라마에서 진화했다.

드라마에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하면서 ‘기억’은 신비로운 요소로 자리 잡았다.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인어 심청(전지현 분)은 입맞춤으로 상대가 지닌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도깨비’에는 기억을 잃지 못해 괴로운 자(공유-도깨비 김신)와 기억을 잃어 되찾고자 하는 자(이동욱-저승사자)가 등장한다.

‘기억’을 대하는 드라마의 달라진 시선은 극 전개를 위한 소재로 쓰임에서 더 나아가 주인공의 심경에 큰 진동을 준다. 이는 인물관계에 주는 변화의 깊이가 달라지게 만든다.

‘푸른 바다의 전설’ 속 심청은 허준재의 기억을 지우지만, 허준재는 전생의 기억을 되살리며 예외를 만들어냈다. 이 설정은 심청과 허준재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강조한다. 허준재는 기억을 되찾음으로써 심청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허준재에 대한 심청의 무한한 사랑이 다시 한 번 드러난다.

특히 심청은 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죽은 딸의 억울함을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여성을 만나 깨달음을 얻는다. 심청은 여성에게 “난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 원하면 기억을 지워주겠다, 슬프게 하는 기억. 딸 생각 안 나면 안 슬프고 안 아플 수 있지 않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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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딸과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무리 아파도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갈 거다”라며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낫다”고 답한다.

앞서 서로를 위해 허준재의 기억을 지워버린 심청이 ‘아파도 기억하고 싶은 사랑’을 깨달은 것은 본인에게도, 허준재와 관계에도 큰 의미를 갖는다.

‘도깨비’에서는 도깨비가 자신의 괴로운 전생을 잊지 못해 힘들어한다. 불멸하는 본인과 달리 곁에 있던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걸 지켜보는 것은 고문 수준이다. 도깨비에게 ‘기억’이란 잊고 싶은 존재이자 신의 저주다.

도깨비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아줄 도깨비 신부를 찾아다녔다. 목적은 오로지 소멸이었다. 하지만 도깨비는 지은탁(김고은 분)을 사랑하게 되며 삶의 의욕을 찾는다. 아픈 기억은 가슴에 묻길 택한다. 사랑하는 이와 새로운 기억을 채우며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저승사자가 받은 신의 벌은 전생의 기억을 잊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도 과거도 알지 못해 사랑하는 이에게 속 시원하게 본인에 대해 털어놓지 못한다. 이름과 종교가 뭐냐는 말에, 명함은 있냐는 써니(유인나 분)의 말에 저승사자는 대답할 수 없다. 기억이 없다는 것은 곧 정체성이 희미하다는 것.

기묘하게도 저승사자는 자신의 운명과 달리, 망자에게 생전 기억을 잊게 해주는 차(茶)를 건넨다. 이생에서 죄를 짓지 않은 자는 힘든 기억을 지우고 천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죄를 지은 자는 아무런 기억도 잃지 못하고 지옥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 기억상실이 망자에게 부여되는 보상인 점을 봤을 때 저승사자 역시 도깨비처럼 살지도 죽지도 못한 슬픈 존재다.

이처럼 ‘푸른 바다의 전설’과 ‘도깨비’는 ‘기억’이라는 요소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가지만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쓸모없는 기억은 없다는 것, 아픈 기억도 결국엔 사랑 앞에서는 견딜 수 있는 추억이 된다는 것.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lshsh324@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