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시장 지위를 이용해 특허권을 남용했다며 퀄컴에 역대 최대 규모인 1조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특허와 칩셋 공급을 연계해 정상적인 경쟁을 방해했다는 이유다. 퀄컴이 보유한 표준필수특허(SEP)를 여러 칩셋 제조사가 동등하게 사용하도록 허락하라는 시정명령도 함께 내려졌다.
공정위는 특허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퀄컴 인코포레이티드와 퀄컴 테크놀로지 인코포레이티드, 퀄컴 CDMA 테크놀로지 아시아퍼시픽 PTE LTD 등 3개 업체(이하 퀄컴)에 과징금 1조300억원과 함께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과징금은 사상 최대 규모다. 종전 최대 과징금은 2010년 판매가격 담합을 이유로 6개 액화석유가스(LPG) 공급회사에 부과했던 6689억원이다.
◇퀄컴, FRAND 확약 사실상 위반
칩셋제조사이자 특허권사업자인 퀄컴은 휴대전화 생산에 필수인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를 보유했다. 표준필수특허란 해당 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제품 제조·판매나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한 특허를 의미한다. 표준필수특허로 인정되려면 특허권자는 특허 이용을 원하는 사업자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FRAND·프랜드) 조건에 특허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표준화기구 프랜드 확약을 선언해야 한다.
하지만 퀄컴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 등 표준화기구에 프랜드 확약을 했지만 삼성전자·인텔 등 칩셋업체가 표준특허 계약 체결을 요구하면 이를 거부하거나 판매처 제한 등의 조건을 붙여 실질적으로 특허 사용을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휴대전화 제조사에 불공정 계약 체결 강요
퀄컴은 시장지배력을 지렛대로 칩셋 공급 중단을 위협하며 휴대전화 제조사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체결했다. 또 특허를 표준필수특허와 일반특허, 이동통신표준(2G·3G·LTE 등)별 표준특허로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 라이선스만 제공하는 등 자신이 정한 특허사용계약을 강요했다.
한편 자사 특허에 대한 실시료는 받으면서도, 상대 휴대전화업체가 보유한 이동통신 필수특허는 퀄컴이 무상 사용하는 형태의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요구했다. 휴대전화 제조사는 칩셋을 공급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특허를 무상으로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또 퀄컴 외 다른 업체 칩셋을 사용한 휴대전화 제조사도 특허가 퀄컴에 집중되면서 퀄컴의 특허 공격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경쟁제한적 사업모델 구축 통한 독점력 강화
결국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점점 퀄컴 칩셋 의존도가 커졌고, 마땅한 공급처를 찾지 못한 다른 칩셋 제조사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국내 유일의 중소 모뎀 칩셋업체였던 이오넥스도 2009년 결국 시장에서 퇴출됐다.
공정위는 퀄컴이 이처럼 `경쟁제한적 사업모델`을 만들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경쟁제한적 사업모델이란 경쟁 칩셋사에 대해서는 라이선스 제공을 거절·제한하고 시장을 독점하는 한편, 휴대전화 제조사에 대해서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칩셋 공급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프랜드 확약을 회피하며 칩셋 및 특허 라이선스 시장에서 독점력을 유지·강화하는 순환 구조를 말한다.
◇공정위 결정과 이에 따른 파장은?
공정위는 과징금 외에 칩셋업체가 요청하면 퀄컴이 특허 라이선스 계약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는 시정명령도 내렸다. 또 휴대전화 제조사 등에 칩셋 공급을 볼모로 특허사용계약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관련 계약조항 수정 또는 삭제를 명령했다.
아울러 휴대전화 제조사와 특허계약을 할 때 특허 종류 구분 없이 포괄적인 계약 체결을 강제하는 행위 및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한편, 휴대전화 제조사가 요청하면 기존 특허계약도 재협상할 의무를 부여했다.
업계는 이번 시정명령으로 국내 칩셋·제조사의 특허료 부담이 낮아져 휴대전화 가격도 인하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또 특허권을 퀄컴에 사실상 무상 제공하던 관행이 사라지면 휴대전화 제조사의 연구개발투자가 탄력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위는 2014년 8월 퀄컴 조사에 착수, 지난해 11월 조사를 마치고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공정위 심사관과 퀄컴 측이 함께 참여하는 전원회의는 지난 7월부터 총 7차례 열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애플, 인텔, 화웨이, 에릭슨 등 세계 각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대거 심의에 참여했다.
퀄컴은 “공정위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며 “공식 서류를 받는 대로 시정명령 중지를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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