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금융 시장은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을 통해 전통 창구 대신 새로운 채널 혁신을 주도한 해라고 평가된다. 수많은 정보기술(IT)을 접목해 기존에 없던 다양한 금융 서비스와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한 해였다. 그 결과 로보어드바이저를 비롯해 블록체인·생체인증 등 세상에 없던 서비스가 출현했고, 인터넷전문은행 등 신규 시장 사업자도 등장했다.
이는 역으로 전통 은행·증권·보험사 등이 쥐고 있던 주도권을 IT 기업과 스마트폰 제조사, 유통사, 스타트업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로 작용했다.
2016년은 핀테크 혁명이 시장에 안착되는 매우 중요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알파고, AI의 등장…내 돈을 로봇에게 맡길까?
올해 금융 시장을 강타한 로보어드바이저의 등장은 소비자 자산관리 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국내 금융사에서 잇달아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출시를 예고, 자산관리 시장에는 전운까지 감돌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고도의 기술력이나 지식을 요하는 의학, 컨설팅, 재무 설계, 자문 등 서비스업은 급속히 발전했다. 상위 1% 사람들은 소유한 부 과시를 위해 여행이나 기타 활동 일정을 조율하는 컨시어지 서비스를 받거나 개인 비서를 두기도 한다.
은행은 프라이빗뱅커(PB)가 배치돼 모든 투자와 은행 업무에서 1대1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AI)이 떠오르면서 전통 금융 인프라와 플랫폼은 종말 위기에 놓였다. 비단 금융 산업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비효율성이나 부정확성을 기계가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 금융 분야도 이 같은 AI 등장으로 전통 채널이 붕괴되는 시점에 왔다. 소비자도 사람과 로봇(로보어드바이저) 가운데 누구에게 돈을 맡길까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최근 금융사들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에 맞춰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투자자문사 쿼터백이 국내 첫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자산운용사를 출범, 화제를 모았다. 또 신한, KB국민, 우리, KEB하나 등 주요 은행권에서도 그룹사와 연계해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속속 구축했다. 금융 당국도 올해 핀테크 육성을 핵심 키워드로 잡고 다양한 로보어드바이저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점포가 사라진다, 인터넷전문은행 등장
100% 비대면, 지점이 필요 없는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정부로부터 본인가를 받고 새해 1월 말에 문을 연다. 24년 만에 출범하는 신규 은행이다.
단순 송금과 이체는 물론 비대면 실명 확인을 이용한 계좌 개설, 대출 등 전통 은행의 모든 업무를 시·공간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왔다.
케이뱅크는 전통 은행과 다른 사업 모델을 다수 공개했고, 소비자 평가만 남겨 두고 있다. 기존 금융에 익숙한 소비자가 비대면 기반 서비스를 편리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실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카카오뱅크도 조만간 본인가를 신청할 예정이어서 전통 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간 치열한 격전을 예고했다.
카카오뱅크는 로봇이 인간과 대화하는 `챗봇(Chatbot)`을 전면에 내세웠다. 고객 질문을 24시간 실시간 상담해 주는 카카오톡 기반의 금융봇이다. 금융봇은 공과금 납부 일정, 자동이체 결제 내역,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주변 식당을 안내할 예정이다. 또 고객 재무 상황을 점검·관리해 주고, 상품 추천 및 상담 서비스까지 지원한다.
두 은행 모두 저금리 기조에서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무기로 `혁신 이자 서비스`를 공개, 관심을 모은다.
◇내 몸으로 인증하는 시대 개막
올해 금융권은 공인인증서를 대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생체 인증을 통한 거래 확대다. 지문이나 홍채는 물론 심전도, 정맥 인식 등 다소 생소한 생체 인증 기술까지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10여년 동안 사용해 온 공인인증서 방식의 보안 시스템을 대폭 개선하자는 취지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홍채 인증만으로 로그인해서 계좌 이체, 송금 등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IBK기업은행은 입출금과 계좌 조회를 홍채 인증만으로 할 수 있는 `홍채인증 ATM`을 내놨다.
NH농협은행은 공인인증서 대체 기술과 생체 인증을 자사 전체 금융 플랫폼에 탑재한다. 홍채 인증, 화자 인증 등 생체 기반 인증으로 공인인증 금융 서비스 전반에 새로운 변화가 기대된다.
신한은행은 정맥 인증으로 통장을 개설할 수 있는 디지털 키오스크 24대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정맥 인증은 손가락 속에 흐르는 정맥의 형태를 지문처럼 이용하는 기술이다.
증권사 역시 생체 인증에 눈을 돌리고 있다.
증권업계는 은행들이 앞다퉈 지문 인식 인증을 도입할 때도 공인인증서 방식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보안성과 편의성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최근 들어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중심으로 생체 인증 기술 도입에 나서고 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