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똑똑한` 의사가 의료산업 역군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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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철 SW콘텐츠부 기자

“솔직히 말한다면 논문 많이 쓰는 교수는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의사가 대부분 자신만 위하는 논문에 매달려서 되겠습니까.”

대학병원장을 지낸 교수의 말이다. 실제로 그는 원장 재임 시절에 논문 많이 쓰는 교수를 질타한 적이 많았다. 의사가 새로운 치료법이나 기술을 연구하고 결과를 만인에게 공개하는 논문이 왜 이기심 어린 행위일까.

의료를 포함한 바이오 분야에서 지난해 우리나라 SCIE 논문 게재 수는 9697건이다. 세계 11위다. 2014년(9354건)과 비교, 300건 이상 늘었다. 미국 등록특허 출원 건수도 같은 기간 260건으로 세계 8위에 올랐다. 짧은 바이오 역사를 고려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문제는 지식재산권의 급성장 뒤에는 `논문을 위한 논문`이 많다는 점이다. 정부 연구개발(R&D) 과제 90% 이상이 평가 항목으로 논문, 특허 등 지식재산권 여부를 묻는다. 상당수 교수들은 정부 과제 수주로 몸값을 높이고, 연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다. 해마다 2조원이 넘는 바이오 R&D 예산이 학교, 병원, 연구소, 기업 등으로 흘러간다. 조금 과장하면 제대로 쓰였는지 평가가 논문 하나면 해결되는 세상이다. 바이오 분야 특성상 연구 결과를 실물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을 감안해도 평가 시스템이 너무나 경직되고, 1차원 수준이다. 기존의 결과물을 재해석하거나 조금만 바꾼 파생 논문, 파생 특허가 남발되는 등 `모럴 해저드(도덕성 해이)`가 발생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근본으로는 논문 작성에 매달리게 만드는 국가 R&D 평가 체계와 병원 인사고과 제도를 재편해야 한다. 사업화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평가 기준에 포함시키거나 논문을 제외한 정성 평가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의사도 병원 안이 아닌 밖에서 환자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권의 논문도 환자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 대의 의료기기나 하나의 신약을 개발한다면 수천, 수만 명을 살릴 수 있다. 의료 서비스 제공자에서 의료 산업 역군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필요하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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