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다고 천시되던 똥(인분)이 재조명된다. 장내 미생물이 다량 함유된 똥을 대장염 환자에게 주입하거나 캡슐로 만들어 건강기능식품으로 먹는다. 건강한 미생물만 걸러내 각종 대사증후군, 신경·정신계 질환 치료제까지 개발한다. 묵히면 `똥` 된다가 아닌 걸러내면 `약` 되는 시대가 왔다.
11일 병원과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인분을 활용한 치료기법과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신약이 활발히 개발된다. 장내 미생물을 연구하는 `마이크로바이옴` 논의가 확산되면서 인분에 대한 인식전환도 빠르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미생물은 장내, 표피, 구강, 기관지, 생식기 등 곳곳에 존재한다. 장내 미생물은 생체대사 조절과 소화능력에 영향을 준다. 알레르기, 비염, 아토피 같은 대사·면역질환은 물론 장염, 심장병, 우울증, 자폐증, 치매까지 장내 미생물로 상태를 호전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의학계는 건강한 사람 인분 속에 다량 함유된 장내 미생물에 주목했다. 미생물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환자나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와 같은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박테리아 치료에 인분을 활용하는 방안을 착안했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는 장내에 있다가 수술 등 이유로 장기간 항생제를 투여하면 폭발적으로 증식한다. 항생제에 내성이 있어 치료가 어렵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한 해 1만명이 넘는 사람이 이로 인한 대장염으로 사망한다.
분변이식은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로 인한 대장염, 과민성 장질환에 효과적이다. 건강한 사람의 인분을 관장으로 환자 장내에 주입한다. 공여자와 환자 미생물 균주가 공존하거나 공여자 미생물이 대체하는 역할을 한다.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수술 환자나 노인은 항생제를 많이 쓰면 장에 유익한 균이 상당수 죽어 장염에 걸린다”면서 “건강한 사람 분변을 내시경으로 이식하는 방법은 항생제가 듣지 않는 장염에 효과적이며 의학계에도 정식 치료방법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인분을 직접 주입하는 것에 불쾌감을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는 방안도 강구된다. 인분을 급속 냉동하거나 미생물만 채취해 알약 형태로 만드는 게 대표적이다. 미국 인분은행인 오픈바이옴은 인분을 급속 냉동해 캡슐에 넣어 간편하게 섭취하도록 했다. 건강한 인분을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연간 1000만원 넘는 금전적 혜택도 제공한다. 똥값이 금값이 됐다.
국내에서는 인분을 직접 가공하기보다는 추출 가공이 대부분이다. 쎌바이오텍은 신생아나 농촌에 거주한 건강인 인분에서 채취한 미생물을 배양해 건강기능식품, 화장품을 출시했다. 프로바이오틱스 유전정보를 분석해 출시한 유산균은 임상시험으로 과민성 대장증후군 증산 개선과 장내 유익균 증가를 확인했다. 한국야쿠르트에서 출시한 `세븐` 역시 태어난 지 7일 내 신생아 변에서 채취한 미생물로 야쿠르트를 만들었다.
인분을 이용한 신약 개발도 속도를 낸다. 지놈앤컴퍼니는 장내 미생물을 활용해 항암제 효과를 배가 시키는 의약품을 개발 중이다. 엠디헬스케어는 장내 미생물 나노소포를 분석해 대장암을 비롯한 각종 암에 효과적인 신약을 개발한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최근 바이오뱅크힐링이라는 기업까지 설립해 장내 미생물을 연구한다. 건강기능식품, 미생물 분석 서비스, 신약개발 등 다방면 사업을 준비한다.
장내 미생물을 이용한 신약 개발은 대부분 연구개발, 임상단계다. 이르면 2018년부터 시장에 출시되는 치료제가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시장규모도 연평균 20% 이상 고속 성장해 2019년에는 약 35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배지수 지놈앤컴퍼니 대표는 “더럽다고 생각되던 인분이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새롭게 조명된다”면서 “핵심인 장내 미생물을 선제적으로 연구한다면 장, 피부 질환은 물론 암 치료까지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