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의 성공경제] <52>실패한 선발주자 (1)싸이월드

싸이월드는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석·박사 과정 6명이 결성한 창업 동아리가 모태가 돼 1999년에 설립됐다. 2001년 미니홈피 등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로 변모하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2003년 이후 `폰카`로 사진을 찍어 인터넷 친구들과 공유하는 `싸이질`은 국민 놀이 문화로 정착했다.

2003년 8월 SK그룹에 흡수·합병되면서 글로벌 진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2004년 가입자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그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됐다. `1촌`이라는 온라인 친구, `도토리`라는 온라인 화폐 등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냈다. 2008년에 가입자 3000만명을 돌파한 싸이월드는 한 해 도토리 판매에만 800억원이 됐고, 시가총액이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세계 인터넷 문화를 선도하던 그 당시의 도전이 성공했다면 오늘날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글로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장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2006년 5월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은 미국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싸이월드는 마이스페이스보다 더 오프라인 지향이고, 페이스북보다 더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구글을 능가하는 기업이 될 겁니다.”

결과는 실패였고, 잘나가던 국내 시장에서도 점차 해외 SNS 서비스에 자리를 빼앗겼다. 동시에 싸이월드와 플랫폼을 공유하던 포털사이트 `네이트`의 검색 점유율은 1% 아래로 추락했고, 한동안 국민 메신저로 불리던 `네이트온`도 카카오톡에 밀려 존재감을 잃었다. 선발 주자 싸이월드가 실패한 이유를 찾아보자.

첫 번째 가장 큰 실패 요인은 신념 체계가 무너진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즉 창업 정신이자 이념을 구성하는 `뜻과 의지`가 손상됨으로써 창발 혁신의 핵심 동력을 잃게 된 것이다. SK그룹으로 흡수 합병된 직후 창업 멤버 대부분이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여러 명의 대기업 전문 경영인들이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평균 2년이 채 안 되는 재임 기간을 거쳐 갔다. 원래 작은 벤처기업이라 하더라도 탄탄한 창업 이념이 있으면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제프 베저스의 아마존, 래리 페이지의 구글,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이해진의 네이버, 김범수의 카카오가 그렇게 성공했다.

둘째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목표로 해야 했다. 아무리 국내 시장에서 1위를 독보한다 해도 무의미할 수 있다. 국내 기반을 다진 후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정석이던 제조업과 다르다.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 전 세계를 장악해 버리는 인터넷과 모바일 시장에서는 처음부터 국경 없는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싸이월드는 해외 사업의 잇따른 실패에도 국내에서 여전히 기세가 등등했지만 2009년 애플의 아이폰이 진입하면서 그 시장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셋째 변화의 물결을 타기 위한 전략 대응에 실패했다. 당시 싸이월드는 PC 메신저인 네이트온과 긴밀히 연동, 사용자들을 쉽게 경쟁사에 빼앗기지 않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강점이 변화를 거부하는 실패 요인이 되고 말았다. 소비자들은 점차 모바일 메시징 서비스로 이동하려 하지만 회사는 PC 기반의 강점에 매몰된 채 모바일 투자에 미적댔다. 그러는 사이 카카오톡이 등장, 순식간에 이용자들을 휩쓸어 갔다.

넷째 운 관리에 실패했다. 극단의 불확실성에서는 행운과 불운이 예고 없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서 행운을 극대화하고 불운에 재빨리 대응,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필수다. 2011년 3500만명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싸이월드 재기 노력에 치명상을 안겼다. 보안에 대한 투자만 적절히 했어도 막을 수 있은 사건이라는 평가다.

오늘날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한 페이스북, 라인을 성공시키며 시가총액 29조원을 돌파한 네이버, 국내 시장을 장악한 카카오톡을 보면 선발 주자가 남긴 시장은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Photo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