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ICT소재부품연구소 전문위원 hjryu@etri.re.kr
2007년 아이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단순한 인터페이스로 인간의 직관적인 움직임을 수용한 것이다. 그저 누르거나 만지는 것만으로 기계의 동작에 접근하도록 했다. 이는 수많은 열광적인 숭배자를 만들어 냈다.
그 후 우리는 스티브 잡스의 입을 통해 아이폰의 비밀을 들을 수 있었다. 애플의 개발전략 핵심은 인문학적인 접근과 기술적인 해결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었다. 인간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던 그들의 개발전략은 기대에 찬 구매자들의 바람을 만족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왜 우리는 아이폰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을까? 기술의 뿌리는 바로 인간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존재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은 영어의 `art`를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 `art`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ars`에서 온 것이다. 로마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기에 사용되던 `ars`는 예술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술보다는 그 당시 도시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대표하는 단어였다.
형이상학적인 학문에 경도되어 있던 그리스의 풍토와는 달리 현세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던 로마인들은 지금 보아도 감탄을 자아내는 놀라운 건축물들을 지었다. 로마시내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콜로세움과 원형경기장이 그러하다.
보다 놀라운 건축물은 수도교다. 로마인들은 수도교를 통해서 깨끗한 물을 도시에 공급했다. 이 수도교에서 우리는 로마인들의 철저한 기술적 성취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수도교의 기울기를 1㎞ 당 10㎝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수원에서 도시까지 별다른 인공적 동력없이 취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술적 완결성은 거의 예술적인 수준이다.
로마의 기술에서 비롯된 서구의 분석적 세계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서구 과학기술은 당분간 기술적 주도권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우리 연구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기술의 최종 결과물은 인간을 향해야 하는 것이다. 진화를 게을리 할 때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직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난 15년간 정부출연연구원에 몸 담아 왔다. 처음에는 겁 없이 좌충우돌했지만 어느덧 중견연구자가 됐다. 그동안 여러 과제를 수행하면서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의 궁극적 지향점에 큰 의심 없이 연구개발에 참여했다.
그러나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와 서두에 예를 들었던 아이폰의 등장은 과학기술의 최종 목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줬다.
과학기술자들은 인문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기술의 뿌리는 예술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 기술 개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렇지만 짧은 기간에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다. 압축성장이다. 그러나 속도에 매몰된 우리나라 기술개발 역사는 적절한 철학적 토대와 인문학적인 접점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술개발은 의미가 없다. 진실로 인간을 위한 기술개발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고민을 거쳐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또 하나의 `아르스 노바(Ars Nova)`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역동적인 변화를 모색해 후손들이 감탄할 만한 `Ars`를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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